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횡성 자연휴양림 숲속의 집 401호에서 느낀 낭만 | 유목적 시선 #08

횡성 자연휴양림 숲속의 집 401호에서 느낀 낭만 | 유목적 시선 #08


이 시리즈 관점 


유목적 시선 시리즈 

횡성 자연휴양림 401호
숲속의집 401호 앞

횡성 자연휴양림 계곡
횡성자연휴양림은 아기자기한 물이 많이 흐른다

횡성자연휴양림 401호: 신라의 전설과 화전민의 땀이 섞인 좌표

어떤 장소는 존재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농담 같을 때가 있다. 강원도 횡성의 어답산 자락, '저고리골'이라 불리는 깊고 축축한 골짜기에 자리 잡은 횡성자연휴양림이 바로 그런 곳이다. 신라 혁거세가 발걸음을 했다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그럴싸한 전설과, 불과 1970년대까지 팍팍한 삶을 연명하던 화전민들의 거친 숨결이 한데 뒤엉켜 있는 땅. 게다가 이 깊은 산속에는 뜬금없이 서부 개척 시대를 복각해 놓은 '아리조나 카페'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그 안에서는 레더맨(Leatherman)이나 거버(Gerber) 같은 본격적인 서바이벌 생존 장비를 팔고 있다. 말하자면,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연출한 한국형 아웃도어 세트장 같은 느낌이랄까.

횡성 자연휴양림
횡성자연휴양림 입구
횡성 자연휴양림
횡성의 상징 소 조형물이 입구에 있다

하지만 핵심적인 정보는 따로 있다. 당신이 만약 이 매력적인 사설 휴양림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그리고 그 목적이 고상한 산림욕이 아니라 시끌벅적한 수컷들의 합법적 일탈이라면, 예약창에서 반드시 '숲속의 집 401호'를 낚아채야 한다는 것이다. 16평형의 이 독채 통나무집은 연립동의 소음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거실 창문을 열면 곧바로 전용 바비큐 데크로 연결되는 결정적인 구조를 지녔다. 심지어 데크 위로는 견고한 지붕이 덮여 있어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도 당신의 소중한 삼겹살과 소주는 결코 젖지 않는다. 수영장도 지척이다. 이것은 단순한 건축적 특징이 아니다. 이것은 신이 40대 중년 남성들을 위해 설계한 완벽한 '요새'에 가깝다.

횡성 자연휴양림 주차증
401호 주차확인증
횡성 자연휴양림 401호
울창한 숲속에 401호가 있기때문에 모기향은 필수다
횡성 자연휴양림 약도
횡성 자연휴양림 약도

빗소리와 2001년의 바다, 그리고 임계점

나는 주류회사에서 이따금씩 데이터와 판매량을 들여다보곤 하는 사람이다. 매일같이 알코올이 어떻게 소비되고 어떤 프로모션이 사람들의 지갑을 여는지 분석하다 보면, 역설적으로 술이라는 액체가 지닌 낭만에 대해 한없이 건조해지기 마련이다. 주말이면 거실에 흩어진 세 살배기 아들의 장난감을 치우며, 나스닥 차트의 거래량 이동평균선이 내가 정해놓은 임계칠를 돌파하는지 안 하는지 조마조마하게 들여다보는 철저히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중년의 삶. 나는 내 삶의 리스크 관리 원칙처럼, 감정의 이동평균선이 일정 수치를 넘어가면 스스로 전원을 차단하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401호 건배

하지만 그날, 숲속의 집 401호에 모인 인간들을 마주한 순간 그 모든 이성적 통제는 쓸모없는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다.

해병대 교육훈련단 그렇다. 2001년 아프간 파병으로 해병대가 뒤숭숭하던 그 때 얼룩무늬 훈단 전투복을 입고 얼찰려를 받던 그 추억의 군대 동기 녀석들이었다. 훈단 시절의 날 선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다들 뱃살이 적당히 오르고 머리숱을 걱정하는 아저씨들이 되어 있었다. 교사로 한 커피프렌차이즈의 팀장으로, 건축가로, 혹은 카메라 감독으로 각자의 인생을 치열하게 굴러먹다 온 녀석들은 401호 거실 바닥에 짐을 풀자마자 익숙한 솜씨로 냉장고에 소주부터 테트리스 하듯 채워 넣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정해둔 인생의 리스크 한계치, 그 빌어먹을 나스닥 지수라는 숫자를 조용히 머릿속에서 지웠다. 오늘 밤, 이 녀석들과 함께라면 그 수치가 어떻게 되든 폭락장이 와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401호 데크
올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신났다

밤, 그리고 비와 고기의 완벽한 역학

우리가 굳이 이 산구석 401호까지 기어들어 온 진짜 이유는, 저녁 무렵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기 시작한 비 덕분에 완벽하게 증명되었다.

거실과 곧바로 연결된 바비큐 데크는 비 내리는 날 그 진가를 발휘한다. 빗방울이 지붕을 때리는 소리는 마치 아델의 19 음반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처럼 일정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슬리퍼를 끌고 거실과 데크를 문턱 하나로 오가며 고기를 굽고 술을 날랐다.

쐬주에 오뎅탕도 세팅해놓고요

숲의 밤은 도시의 밤과 다르다. 나는 평소 넷플릭스를 볼 때 화면의 감마값을 1.8로, 블랙 레벨을 40 언저리로 맞추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야만 어둠 속의 디테일이 뭉개지지 않고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횡성자연휴양림의 밤은 인위적인 캘리브레이션이 필요 없는, 그 자체로 완벽한 심연의 블랙이었다.

낭만의 삼겹구이

그 짙은 어둠을 배경으로 조명 아래서 삼겹살의 지방이 숯불 위로 떨어지며 먹음직한 연기를 피워 올렸다. 빗소리, 고기 굽는 소리, 그리고 20여 년 전 해안가에서 겪었던 믿거나 말거나 한 무용담들이 섞여들었다. 데크에 설치된 비가림막은 물리적인 비만 막아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실의 피로와 중년의 책임감이라는 차가운 비를 막아주는, 아주 사적이고 기적적인 결계였다. 우리는 그 결계 안에서 안전하게, 철저하게 기억을 회상하고 있었다.

훈련소로 회귀하는 계곡 수영장과 서바이벌 매점

401호를 베이스캠프로 삼았다면, 낮 시간의 잉여로움을 해소할 완벽한 동선이 준비되어 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저고리골 계곡물을 그대로 끌어다 만든 야외 수영장이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라 한여름에도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갑다. 하지만 해병대 출신 녀석들에게 이 정도 수온은 오히려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훌륭한 매개체일 뿐이다. 다들 입으로는 "아이고 허리야, 무릎이야" 하면서도, 막상 물에 들어가면 이빨을 딱딱 부딪치면서 전투 수영을 하던 시절로 돌아가 유치한 물장구를 친다.

횡성 자연휴양림 수영장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하는 자상한 남자들, 물론 수영장까지는 전투구보로 갔다
한잔해 한잔해

수영 후에는 젖은 몸을 털며 입구 쪽의 '아리조나 카페' 겸 매점에 들르는 코스를 추천한다. 낡은 역마차가 서 있는 이 엉뚱한 웨스턴 펍 스타일의 건물 안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장작뿐만 아니라 묵직한 멀티툴들이 유리 진열장 안에 도열해 있다. 수영복 차림의 배 나온 아저씨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거버 택티컬 나이프를 들여다보며 침을 꿀꺽 삼키는 광경은, 오직 횡성자연휴양림에서만 볼 수 있는 한 편의 부조리극이다.

아리조나 카페
아리조나 카페. 컨셉좋다

우리는 왜 사서 고생을 하는가

"아니, 나이 마흔 넘어서 그게 무슨 궁상이냐, 그 돈이면 쾌적하고 뽀송뽀송한 5성급 호텔을 예약해서, 에어컨 바람 쐬며 라운지에서 싱글몰트 위스키나 우아하게 굴리는 게 낫지 않나? 눅눅한 산속에서 모기 뜯기며 숯불 연기에 눈물 콧물 쏟는 게 대체 무슨 낭만이야?"

이렇게 생각 할 수 있다. 이성적으로만 따지면 에어컨 빵빵한 호캉스가 백번 옳다. 하지만 호텔에서의 휴식이 '타인(서비스직)에 의해 세팅된 완벽함'을 소비하는 수동적인 행위라면, 비 오는 휴양림에서의 바비큐는 '우리 스스로 통제하고 만들어내는 혼돈'이다. 번듯한 직함을 달고 사회적 체면을 차리느라 하루하루가 방전되는 중년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우아함이 아니라 '무장해제'다. 거실과 이어진 401호의 데크 위에서는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다. 짝짝이 슬리퍼를 신고 숯불 연기를 뒤집어쓴 채, 종이컵에 콸콸 따른 소주를 들이켜는 행위. 서로의 20대 시절, 그 가장 찌질하고 비루했던 흑역사를 낱낱이 알고 있는 동기들과 함께 욕설과 삿대질을 섞어가며 웃어젖히는 시간.

이것은 단순히 고기를 굽는 행위가 아니다. 사회화된 자아를 잠시 벗어던지고, 날것의 나로 돌아가는 일종의 난장(亂場)이다. 습기 찬 바람과 숯불 냄새, 그리고 거친 농담이 뒤섞인 이 축축한 밤이야말로, 값비싼 위스키 샷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본능적이고 야만적인 치유의 시간인 것이다.

비 오는 날 숲속의 집 401호에서 구워 먹는 삼겹살은, 단순한 돼지고기가 아니라 40대 아저씨들의 위기와 피로를 불태우는 거룩한 캠프파이어다!!

오랜만에 동기들과 함께 기념샷

비워진 소주병과 아침의 햇살

다음 날 아침,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눈부신 햇살이 잣나무 숲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거실 창밖 데크에는 어젯밤의 치열했던 전투를 증명하듯, 빈 소주병들이 초록색 볼링핀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나와, 말없이 그 잔해들을 치웠다.

401호 앞 계곡 반신욕탕
401호 앞에는 얕은 계곡물도 있다. 술 먹고 냉수 반신욕 가능ㅋ

어젯밤의 낭만과 왁자지껄함은 계곡물에 씻겨 내려갔고, 이제 다시 각자의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다시 무거운 카메라를 어깨에 짊어져야 하고, 누군가는 환풍기 공조시스템 도면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며, 또 누군가는 다시 데이터의 엑셀 스프레드시트와 숫자들 앞을 지켜야 한다.

횡성 자연휴양림
울창산 산림에 가려진 401호

하지만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가벼웠다. 2001년의 밤하늘을 함께 지켜보던 우리는, 2026년의 비 내리는 숲속에서 또 하나의 단단한 방파제를 함께 쌓아 올렸다. 401호의 문을 잠그고 산을 내려오는 길, 백미러로 멀어지는 휴양림의 입구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삶의 거래량이 요동치고 견딜 수 없는 임계점이 찾아올 때, 비를 피할 수 있는 단단한 지붕과 나를 비웃어줄 오랜 친구들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복잡하고 피곤한 인생을 제법 훌륭하게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러니 만약 당신도 삶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일단 횡성으로 차를 몰아라. 401호의 데크는 언제든 젖지 않은 채로, 당신의 고기와 한숨을 받아낼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횡성 자연휴양림
다음에 캠핑온다면 찍어둔 명당 A18

횡성 자연휴양림
캠핑하우스
횡성 자연휴양림
b3도 명당
횡성 자연휴양림 명당
b2도 명당


다음 글
->[업데이트 예정]
이전 글
->[연포해수욕장 캠핑장과 쾌적하게 즐기는 노하우 | 유목적 시선 #07]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꾸지나무골 해수욕장 캠핑장에서 느낀점 그리고 낭만 | 유목적 시선 #06

가리왕산 제2야영장 205번 체험기와 제1야영장의 매력| 유목적 시선 #05

[야마노테선과 도쿄 공항 분석] 동료의 무시에 오기로 떠난 도쿄 여행 | 담덕 실록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