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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라플란드 글램핑 후기: 럭셔리함 속에 숨겨진 서늘함 | 유목적 시선 #10

평창 라플란드 글램핑 후기: 럭셔리함 속에 숨겨진 서늘함 | 유목적 시선 #10


이 시리즈 방향성 

유목적 시선 시리즈 

라플란드 캠핑장의 전경
라플란드 캠핑장의 전경

문득, 통제된 고립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 도시의 아스팔트와 끝없이 이어지는 이메일의 늪에서 벗어나, 어디선가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싶은 그런 날들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너무나 나약하고 교활한 현대인이라서, 진짜 야생의 진흙탕 속에 텐트를 치고 벌레와 사투를 벌이는 행동이 귀찮을때가 있다.

자연의 거친 숨결은 느끼고 싶지만, 내 잠자리는 5성급 호텔처럼 뽀송뽀송해야 한다. 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뻔뻔한 욕망인가. 하지만 자본주의는 언제나 인간의 가장 은밀하고 모순된 욕망을 기가 막히게 돈으로 환산해 낸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맑디맑은 흥정계곡 최상류에 은밀하게 요새처럼 자리 잡은 ‘라플란드(Lapland)’는 바로 그 뻔뻔한 욕망이 만들어낸 가장 매력적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평창 라플란드 글램핑 예약과 독점적 텐트 구조의 비밀


차를 몰고 강원도의 깊은 산길을 구불구불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거대한 자작나무 숲 사이에 불시착한 외계 우주선 같은 구조물들을 마주하게 된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각형의 인디언 텐트나, 바람 불면 펄럭이는 캔버스 천막 따위가 아니다. 라플란드의 텐트는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건축물이다.

독특한 라플란드 글램핑 내부 구조와 디자인
독특한 라플란드 글램핑 내부 구조와 디자인

이곳의 대표가 기성품 텐트의 조잡함에 분노한 나머지 직접 디자인하고 특허까지 출원했다는 이 원형의 돔 텐트는, 흡사 핀란드의 오로라 관측용 이글루를 쏙 빼닮았다. 내부에는 기둥이 하나도 없어 개방감이 압도적이다. 사실, 하룻밤 숲속에서 잠을 자기 위해 30만 원이 훌쩍 넘는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은 나의 잣대로 보자면 꽤나 유난스러운 현대적 신경증일 수 있다. 그 돈이면 서울 시내의 꽤 근사한 부티크 호텔에서 룸서비스를 시켜 먹으며 욕조에 몸을 담글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텐트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그 자본의 지출은 묘한 정당성을 획득한다.  중앙에는 바비큐용 숯불 판과 불멍용 장작 화로가 나란히 매립되어 있다. 고기를 굽는 동시에 타오르는 장작을 멍하니 바라볼 수 있도록 동선을 설계한 것이다. 고기와 불. 인류가 수십만 년 전부터 사랑해 마지않던 이 두 가지 원초적 요소를 가장 안락한 의자에 앉아 동시에 즐길 수 있게 만든 이 치밀한 설계는, 거의 강박증에 가까운 배려라 할 수 있다.


강원도 럭셔리 글램핑장의 개별 화장실, 그리고 차가운 바닥의 역설


이 글램핑장의 백미는 텐트 내부의 계단을 통해 밑으로 내려가면 나타나는 지하 복층 구조다. 침실 바로 아래의 땅을 파서 개별 화장실과 샤워실을 숨겨놓은 것이다. 완벽한 시선의 차단. 텐트 밖의 누구도 내가 씻고 볼일을 보는 행위를 눈치챌 수 없다.

밤이 이슥해질 무렵, 나는 와인 기운을 살짝 머금은 채 화장실로 가기 위해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발끝에 타일이 닿았다. 순간, 서늘했다. 아니, 그것은 얼음장 모퉁이의 비수처럼 날카로웠다.

텐트 위층의 침실은 보일러가 맹렬하게 돌아가 온몸의 뼈를 녹일 듯이 뜨거웠지만, 난방 배관이 미치지 못한 지하의 화장실 바닥은 그야말로 빙장(氷藏)이었다. 방안의 온기에 무방비로 이완되어 있던 발바닥의 감각 세포들이, 차가운 타일의 기습에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완벽해 보였던 요새의 유일한 허점. 어쩌면 설계자의 치명적인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얼음장 같은 냉기를 느끼며 이내 무심한 평정심을 찾았다. 만약 이 화장실 바닥마저 난방이 완벽하게 들어와 발끝이 따뜻했다면, 나는 이곳이 평창의 깊은 숲속이라는 사실을 영영 잊어버렸을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돈과 기술로 자연을 밀어내고 콘크리트 동굴을 파더라도, 대지의 서늘한 입김은 기어이 타일 틈새를 뚫고 올라와 우리의 발목을 벤다. 이 차가움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자연의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일한 감각적 증거다. 발이 시리다면? 텐트에 비치된 두툼한 슬리퍼를 챙겨 신으면 그만이다. 무림의 고수도 잠잘 때는 신발을 벗는 법이니까ㅎㅎ


평창 캠핑장 전용 주방에서 굽는 스테이크와 루크 콤즈의 컨트리 음악

라플란드의 또 다른 호사는 텐트 옆에 딸린 독립된 전용 주방이다. 나는 휴대폰을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하고 루크 콤즈(Luke Combs)의 음악을 틀었다. 묵직하고 거친 그의 컨트리 보이스가 좁은 주방의 공기를 꽉 채웠다.

독특한 라플란드 글램핑 내부 구조와 디자인
일단 샐러드 한사발 만들어놓고요!!^^

잘 달궈진 무쇠 팬 위로 두툼한 소고기 스테이크를 올렸다. '치이익' 하는 맹렬한 파열음과 함께 기름이 튀고 고소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쪽에서는 신선한 샐러드 채소를 무심하게 툭툭 썰어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을 들이부었다. 창밖으로는 자작나무의 흰 기둥들이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서 있었고, 귀에서는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가수의 컨트리 리듬이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스테이크와 샐러드 조합 좋구요


스테이크 색감이 참 좋아요

캠핑장에 와서 요리를 한다는 것은 사실 대단히 소모적인 노동이다. 재료를 씻고, 불을 피우고, 냄새를 뒤집어쓰고, 끝내 설거지까지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잘 꾸며진 독채 주방에서 루크 콤즈를 들으며 고기를 굽는 행위는 노동이 아니라 일종의 종교적 의식에 가깝다. 고기의 겉면이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며 짙은 갈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그것은 도시의 엑셀 시트나 마케팅 기획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매우 즉각적이고 정직한 성취감이다. 고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불과 시간이 모든 것을 결정할 뿐.

라플란드 글램핑 캠프파이어
캠프파이어


라플란드 글램핑 캠프파이어


캠프파이어는 와인과함께

흥정계곡 하늘캠핑장 수심 5m 다이빙 포인트의 서늘한 기운

다음 날 낮, 나는 텐트를 벗어나 흥정계곡의 물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라플란드 앞의 계곡은 수심이 얕고 다정했다. 아이들이 튜브를 타고 놀기에 딱 좋은 평화로운 시냇물. 하지만 그건 자연의 진짜 얼굴이 아니다. 물줄기를 따라 하류 쪽으로 인접한 ‘하늘캠핑장’ 구역에 다다랐을 때, 계곡은 돌연 음산하고 거대한 본색을 드러냈다.

라플란드와 하늘캠핑장은 연결되있음
라플란드와 하늘캠핑장은 연결되있고 5m수심 흥정계곡이 있다

수심 5미터. 물은 맑음을 넘어 시커멓게 멍들어 있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물 웅덩이 주변으로는 기묘한 정적이 흘렀고, 햇빛조차 닿지 않아 서늘한 한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압도적인 수심 앞에서는 누구나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다.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저 시커먼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

잠시 바람이 멎었다. 물결은 고요하다. 망설임은 길어질수록 독이 된다. 나는 몸을 날렸다.

'풍덩' 하는 파열음과 함께 온몸이 물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수만 개의 얼음바늘이 모공을 찌르는 듯한 극심한 냉기가 심장을 부여잡았다. 숨이 턱 막히고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뼛속까지 얼어붙는 이 지독한 차가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순간, 폐부 깊숙한 곳까지 팽창하는 강렬한 희열이 밀려왔다. 살아있다. 나는 지금 압도적으로 살아있다. 5미터 깊이의 계곡 다이빙은 단순한 물놀이가 아니라, 무뎌진 생존 감각을 벼려내는 짧고 강렬한 투쟁이었다.

라플란드와 하늘캠핑장은 연결
물색 참좋은 흥정계곡


우리가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자연으로 떠나는 진짜 이유 (총평)


이쯤에서 나는 철학적인 질문 하나를 던진다.

'왜 우리는 편안한 집과 호텔을 놔두고, 수십만 원의 돈을 길바닥에 뿌려가며 굳이 숲속으로 기어들어 오는가?'

누군가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멋진 이글루 텐트 사진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누군가는 전용 주방에서 굽는 스테이크의 맛 때문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이 라플란드에서의 1박 2일, 그리고 깊은 흥정계곡에서의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은 조금 다르다.


우리가 글램핑장이라는 공간을 소비하는 이유는, '통제된 안락함 속에서 아주 안전하게 야생의 불편함을 훔쳐보기 위해서'다.

라플란드의 수영장
라플란드의 수영장. 옆에 탈의실이 없었던것이 아쉽다

만약 모든 것이 완벽하게 따뜻하고 푹신하기만 하다면 그것은 그저 벽지가 나무 모양인 모텔방에 불과하다. 라플란드의 매력은 그 화려한 시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루크 콤즈의 노래가 흐르는 낭만적인 주방의 문을 열고 나가면, 깊고 서늘한 5미터 계곡의 심연이 있다는 그 아찔한 간극에 있다.


불편함과 서늘함을 모두 제거한 자연은 테마파크의 플라스틱 조경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그 차가운 타일 바닥에 발을 구르며 투덜거리고,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 심장을 졸이며 뛰어든다. 그 작은 마찰과 고통의 순간들이 밋밋한 일상에 균열을 내고 비로소 우리가 숨 쉬는 '생물'임을 자각하게 만든다.


라플란드에서의 아침
이런곳에 와서는 무조건 나와서 먹는게 좋다

그러니 글램핑장에 가서 춥다고, 화장실 바닥이 차갑다고 불평하지 마라. 당신은 바로 그 결핍과 서늘함을 돈 주고 사기 위해 기꺼이 숲길을 달려온 것이니까. 진정한 휴식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중력 상태가 아니라, 거칠고 차가운 자연의 살갗에 내 몸을 한 번 세게 비비고 난 뒤에 찾아오는 나른한 피로감이다. 평창의 깊은 숲, 라플란드의 둥근 텐트와 흥정계곡의 시커먼 물줄기는 완벽하게 그 역할을 수행했다.

자, 이제 젖은 옷을 짜서 말리고 다시 블루투스 스피커의 볼륨을 높일 시간이다. 고기는 아직 한 덩이가 더 남아 있으니까.

즐거운 가족여행 마무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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