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적 시선 시리즈
연포해수욕장 정보
연포해수욕장.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도황리에 위치한, 활처럼 완만하게 둥글게 휜 해안선과 그 뒤로 도열한 3,500평의 울창한 솔숲을 가진 장소다. 이곳의 오토캠핑장 하루 이용료는 대략 3만 원 남짓이다. 재미있는 점은 21세기의 고도화된 IT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어떠한 온라인 예약 시스템도 허락하지 않은 채 전적으로 '선착순 현장 접수'라는 콧대 높은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바다가 바로 보이는 1열에 텐트를 칠 수 있고, 운이 나쁘면 화장실 옆에서 밤새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어야 한다.![]() |
| 1967년 처음 개장하여 현재까지 유지되는 백사장의 모습 |
1967년에 처음 대중에게 개장한 이 해변은 아주 이상하고도 자본주의적인 탄생 설화를 가지고 있다. 1972년, 삼성그룹은 이 한적한 갯벌 구역을 최고급 휴양지로 탈바꿈시키겠다며 막대한 자본을 투입했다. 그들은 백사장을 넓히고 질을 높이기 위해 외부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모래를 덤프트럭으로 퍼 날라 갯벌 위에 쏟아부었다. 갯벌 위에 인공 모래를 붓다니, 마치 새만금 한복판에 야자수를 심어놓고 알로하 셔츠를 입은 채 싱글몰트 위스키를 마시려는 수작처럼 들리겠지만, 놀랍게도 그 무모한 계획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 결과 수많은 텐트가 빽빽하게 들어설 수 있는 완벽한 소나무 숲 모래 사이트가 탄생했고, 캠퍼들에게는 일종의 성소가 되었다. 게다가 서해안치고는 드물게 난류가 흘러들어 수온마저 따뜻하다. 하지만 이 완벽해 보이는 스펙 뒤에는 서해안 특유의 변덕스럽고 신경질적인 조수간만의 차라는 거대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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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포해수욕장 내 캠핑장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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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착순으로 텐트를 치면 번영회에서 돈받으러 다니며 리본을 달아준다 |
모래와 시간
주말 거실에서 레고 블록과 자동차 장난감을 온 사방에 흩어놓고 노는 세 살배기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바다로 가야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아들의 통통하고 부드러운 발가락 사이로 서해의 미세한 모래알이 스며드는 감각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저 답답한 도시의 공기에서 도망치고 싶었을 뿐인지도 모른다.바다라는 공간은 내게 늘 어떤 따듯한 규칙과도 같았다. 2002년, 온 나라가 월드컵의 광기로 들끓으며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누비며 환호할 때, 나는 군대서 일병 계급장을 달고 묵묵히 해안경계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파도 소리만이 유일한 라디오 방송이었고, 칠흑 같은 바다는 내가 한 치의 오차 없이 지켜내야 할, 혹은 언제든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은 거대한 무언가였다. 그때의 바다는 낭만이나 휴식과는 거리가 먼, 가혹한 규율과 징계, 그리고 지독한 피로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나는 아버지가 되었고, 무거운 K-2 소총 대신 무거운 접이식 캠핑 의자와 돔 텐트를 트렁크에 욱여넣고 바다를 향해 운전대를 잡는다.
완벽한 휴식을 위해 나는 종종 집요해진다. 마치 넷플릭스를 볼 때 디스플레이의 감마값을 정확히 1.8로 맞추고 블랙 레벨을 40으로 고정해야만 암부의 디테일이 살아난다며 직성이 풀리는 것처럼, 내 캠핑의 조건들도 완벽하게 수치화되어 통제되어야 했다. 그러나 자연은, 특히 서해안의 조류와 바람은 내 통제 범위를 아주 가볍게, 그리고 비웃듯이 벗어난다. 연포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 얄팍한 내 상상이 자연의 무심함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깨달아야만 했다. 바람이 북서쪽에서 불어왔고, 바로 옆 채석포항에서 탈출한 하얀 스티로폼 부스러기들이 마치 패잔병의 깃발처럼 찰랑거리는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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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과 함께한 연포해변 |
샤슬릭의 짙은 연기와 다국적의 디오라마
바다의 수질이 내 예상과 다르게 실망스럽다고 해서, 연포 해변의 풍경까지 지루한 것은 결코 아니다. 연포의 소나무 숲은 주말이 되면 기이하고도 초현실적인 다국적 라운지로 변모한다. 빽빽한 텐트들 사이로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회백색 연기를 따라가 보면, 거기에는 서산시 지곡면의 자동차 부품 공장이나 대산석유화학단지, 혹은 당진의 거대한 철강 공장에서 평일의 노동력을 남김없이 갈아 넣은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출신의 사내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들은 마치 고향 우즈베키스탄의 넒은 초원에라도 온 것처럼 거대한 철꼬치에 큼직한 양고기와 돼지고기 덩어리를 꿰어 숯불 위에서 '샤슬릭'을 굽는다.![]() |
| 간단하게 뭐 해먹고 있으면 옆에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놀러와서 굽는 샤슬릭의 향연을 볼수있다 |
나는 미지근해진 캔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그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다부진 체격의 한 남자가 숯불 위에서 꼬치를 돌리는 손놀림은 영화 속 바텐더가 마티니를 젓는 것만큼이나 정교하고 리드미컬했다. 고기 기름이 숯불에 떨어지며 내는 '치이익' 소리는 이국적인 슬라브어계 언어들과 섞여 기묘하지만 듣기 좋은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1970년대 한국의 대기업이 모래를 쏟아부어 만든 자본주의적 휴양지에서, 21세기의 다국적 노동자들이 고향의 유목민적 방식을 고수하며 주말의 위안을 얻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캠핑 풍경이 아니라, 거대한 글로벌 자본주의의 이동이 만들어낸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축소 모형, 즉 디오라마(diorama)다. 그들은 왜 하필 수많은 해변 중 이곳으로 올까? 그들에게 연포의 소나무 그늘과 너른 모래사장은, 팍팍하고 외로운 타국의 삶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디스플레이 감마값 1.8의 선명하고도 평온한 안식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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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에 땀빼기 싫다. 그냥 원터치 텐트 던져놓고 피칭!! |
깨끗하고 맑은 서해 연포해수욕장을 즐기는 쾌적한 노하우
여기서 누군가는 코웃음을 치며. "서해안? 거긴 그냥 거대한 갯벌 진흙탕 아니야? 바다에서 제대로 수영을 하려면 얌전히 강릉이나 속초로 가야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서해 똥물에서 물놀이를 해?"이 편견에 가득 찬 의견에 당신들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수있다. 아니, 틀렸다기보다는 지독하게 게으르고 무지하다. 서해안의 수질을 무턱대고 욕하는 자들은 바다를 그저 언제 들어가도 똑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실내 수영장으로만 이해하는 1차원적인 게으름뱅이들이다. 서해는 단순한 물웅덩이가 아니라 수학이자 물리학이며, 치밀한 계산과 타이밍을 요구하는 거대한 유기체다. 연포해수욕장에서 에메랄드빛 맑은 물을 원한다면, 영동고속도로에 비싼 톨게이트 비용과 시간을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바다타임(badatime.com)' 웹사이트에 접속해 '연포방파제'의 조석 데이터를 읽어낸다면 가능하다.
서해를 정복하는 공식은 차갑고 명확하다. 만조(물이 가장 높이 차오르는 정점 시간)에서 정확히 2시간을 빼라. 만약 당신이 방문한 날의 낮 만조 시간이 오후 2시 30분이라면, 당신이 래시가드를 입고 물에 뛰어들어야 할 골든타임은 낮 12시 30분이다. 이때 먼바다의 깨끗한 새 바닷물이 해변을 향해 맹렬히 밀려 들어온다. 수심이 깊어지면서 바닥의 미세한 펄은 가라앉고, 서해라고는 믿기지 않을 투명한 블루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 2시간의 진공 상태. 이것이 자연이 허락한 유일하고도 완벽한 무대다.
만조 정점을 지나 썰물이 시작되는 순간, 바로 옆 채석포항에서 밀려온 스티로폼과 부유물들이 다시 해변 가장자리를 점령한다. 이때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식당 뒷골목의 쓰레기통 속에 자진해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또한 풍향을 반드시 확인해라. 남풍이나 남서풍이 부는 날을 골라야 한다. 북풍이 부는 날에는 채석포항의 모든 어업 폐기물과 부유물이 바람을 타고 당신의 텐트를 향해 정확히 진격할 것이다. 이것은 감성이나 낭만의 영역이 아니라, 철저한 생존과 데이터 분석의 문제다.
화려한 축제와 인파로 발 디딜 틈 없는 몽산포를 피해, 나는 지금 여러개의 사이트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이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솔숲에 있다. 북풍이 불어 스티로폼이 좀 떠다니면 어떤가. 2시간의 골든타임 계산에 실패해 물이 약간 흙탕물이 되었다면 또 어떤가. 우리는 그저 거대한 바다의 호흡과 규칙을 아주 조금 어긋나게 탔을 뿐이다. 물이 더러우면 미련 없이 수영을 멈추고 텐트로 돌아와 아이스박스 깊숙한 곳에서 차가운 맥주 캔을 따면 된다.
또한 풍향을 반드시 확인해라. 남풍이나 남서풍이 부는 날을 골라야 한다. 북풍이 부는 날에는 채석포항의 모든 어업 폐기물과 부유물이 바람을 타고 당신의 텐트를 향해 정확히 진격할 것이다. 이것은 감성이나 낭만의 영역이 아니라, 철저한 생존과 데이터 분석의 문제다.
모래성 축제
물론, 이런 복잡한 계산과 풍향 체크 끝에 도착한 연포에서 당신은 운이 좋으면 모래성 조각들을 볼 수도 있다."어라? 여기 모래로 거대한 조각상 만들고 여름마다 페스티벌 하는 곳 아니었나? 싶을거다. 여기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몽산포해수욕장'이나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벌어지는 모래성 축제처럼 말이다.![]() |
| 모래성 축제가 있었나보다. 캐릭터와 아들을 같이 찍어보았다 |
화려한 축제와 인파로 발 디딜 틈 없는 몽산포를 피해, 나는 지금 여러개의 사이트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이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솔숲에 있다. 북풍이 불어 스티로폼이 좀 떠다니면 어떤가. 2시간의 골든타임 계산에 실패해 물이 약간 흙탕물이 되었다면 또 어떤가. 우리는 그저 거대한 바다의 호흡과 규칙을 아주 조금 어긋나게 탔을 뿐이다. 물이 더러우면 미련 없이 수영을 멈추고 텐트로 돌아와 아이스박스 깊숙한 곳에서 차가운 맥주 캔을 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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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성 축제 |
옆 텐트의 우즈베키스탄 친구들이 정성껏 굽는 샤슬릭 냄새를 훌륭한 공짜 안주 삼아, 세 살배기 아들이 모래사장에 남겨놓은 삐뚤빼뚤하고 작은 발자국들을 감상하면 그만이다. 완벽하게 통제된 휴식 따위는 애초에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다. 여행의 본질은 치밀한 계획이 처참하게 실패했을 때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을 얼마나 우아하고 여유롭게 견뎌내느냐에 달려 있다. 만조 2시간 전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놓쳤다면, 썰물에 끝없이 드러난 광활한 갯벌을 걸으며 진흙이 주는 축축한 철학을 배우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쓰레기가 떠다니는 더러운 바다를 보며 자연을 탓하고 욕을 하지만, 정작 그 쓰레기를 둥둥 떠다니게 만든 것은 그 지역의 인간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밀물처럼 맹렬하게 다가왔다가 썰물처럼 흔적 없이 빠져나간다. 2002년의 긴장감 넘치고 서늘했던 나의 20대 밤바다도, 오늘의 시끌벅적했던 다국적 고기 파티의 연기도, 완벽을 기하며 엑셀 표처럼 짜여 있던 나의 피곤한 캠핑 계획도 모두 시간이라는 거대한 조류를 타고 속절없이 흘러간다. 그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1972년에 누군가 인공적으로 쏟아부은 이 부드러운 모래의 촉감과, 그 위에서 끝없이 집을 짓고 부수기를 반복하며 위안을 찾는 우리의 서툴고도 사랑스러운 삶뿐이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텐트의 지퍼를 끝까지 올린다. 밤바다 특유의 짭짤하고 서늘한 공기가 목덜미를 스친다. 꽤 괜찮은 하루였다고, 계획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훌륭한 하루였다고, 나는 소리 없이 중얼거린다.
우리는 쓰레기가 떠다니는 더러운 바다를 보며 자연을 탓하고 욕을 하지만, 정작 그 쓰레기를 둥둥 떠다니게 만든 것은 그 지역의 인간이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해 질 녘, 연포의 하늘은 보라색과 오렌지색, 그리고 희미한 남색이 섞인 묘하고도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으로 물든다. 한낮의 소란스러움을 품었던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저 멀리 수평선 쪽으로 아득하게 물러나 있고, 젖은 모래사장 위에는 낮 동안 사람들이 남긴 무수한 발자국과 허물어진 모래성 잔해, 그리고 채석포항에서 떠내려온 하얀 스티로폼 조각 몇 개만이 덩그러니 남아 달빛을 받는다. 밤이 깊어지고 바람이 방향을 바꾸면 내일 아침에는 또 다른 맑고 새로운 바닷물이 밀려올 것이고, 짧은 주말이 끝나면 샤슬릭을 굽던 이국의 사내들은 다시 지곡면의 기숙사로 돌아가 묵묵히 기계 앞을 지킬 것이다.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밀물처럼 맹렬하게 다가왔다가 썰물처럼 흔적 없이 빠져나간다. 2002년의 긴장감 넘치고 서늘했던 나의 20대 밤바다도, 오늘의 시끌벅적했던 다국적 고기 파티의 연기도, 완벽을 기하며 엑셀 표처럼 짜여 있던 나의 피곤한 캠핑 계획도 모두 시간이라는 거대한 조류를 타고 속절없이 흘러간다. 그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1972년에 누군가 인공적으로 쏟아부은 이 부드러운 모래의 촉감과, 그 위에서 끝없이 집을 짓고 부수기를 반복하며 위안을 찾는 우리의 서툴고도 사랑스러운 삶뿐이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텐트의 지퍼를 끝까지 올린다. 밤바다 특유의 짭짤하고 서늘한 공기가 목덜미를 스친다. 꽤 괜찮은 하루였다고, 계획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훌륭한 하루였다고, 나는 소리 없이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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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듀 연포해수욕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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