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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부곡동, 일본이 흔적을 남기고간 마을 | 담덕 실록 #04


담덕 실록 시리즈 
관사 마을


1985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어쩌다 보니 나는 경북에서 경기도 시흥군 부곡리, 그러니까 지금의 의왕시 부곡동으로 흘러들어와 있었다. 그곳은 세계의 끝처럼 묘하게 고립된 그린벨트 마을이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 땅은 제국주의 일본의 철도기지가 박혀 있던, 이른바 '관사마을'로써 일본의 식민지 흔적이 남은 공간이었다. 해방 후, 그 뼈대 위로 대우중공업의 전철 공장이 거대한 입을 벌린 채 들어섰다. 아침이 오면 동네 사람들의 최소 30%는 그 공장을 향해 벌떼처럼, 아니, 숙취에 찌든 일개미처럼 쏟아져 들어갔다. 그것은 아주 정교하게 설계된 거대한 톱니바퀴의 풍경이었다.


우리 가족이 세를 든 곳은 마을 끝자락, 다락방이 딸린 비좁고 다닥다닥 붙은 원룸이었다. 아마도 제국주의 시절, 직급이 가장 낮은 말단 철도 노동자들이 새우잠을 자던 수용소 같은 곳이었다. 그 얄팍한 벽 너머로는 꽤 번듯한 더 큰 적산가옥이 있었다. 아마 임대인의 집이었을것이다.

웃기는 건 이거다. 일본군이 철수를 한 뒤, 그 노른자위 큰 집들은 과연 누가 차지했을까? 십중팔구 일본에 알랑방귀 뀌며 손발 노릇 하던 자들이나, 운 좋게 권력의 끈나풀을 쥔 약삭빠른 사람들 아니었겠는가. 제국주의의 '관등계급'은 그렇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한국의 '천민자본'으로 환승했다. 경북 북안면에서 봇짐을 싸 들고 올라온 우리 집은, 그 빌어먹을 자본의 먹이사슬 가장 밑바닥에서 삭월세로 생존 게임을 시작한 셈이다.

마을 입구부터 마을 끝인 역전까지 일직선으로 관통하던 천(川)도 마찬가지다. 일본인들이 인위적으로 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논뚜렁물을 통과시켜 하천을 조성하겠다고 그럴싸하게 파놓은, 지금으로 치면 청계천 뺨치는 낭만적인 구조였으나, 80년대 생활하수가 뒤섞이면서 거대한 썩은 하수구로 전락해 버렸다. 낭만과 똥물이 뒤섞인, 80년대 개발도상의 완벽한 합작품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을에서, 나에게는 내기억에 강렬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어린 시절 나의 첫 이성 친구였다. 우리는 손을 잡고 흙먼지 날리는 동네 곳곳을 누비며 개구리를 잡았다. 부모님들이 보며 “벌써 여자친구가 있네??” 라며 했던말이 기억나는데 그때 내 기분은 남녀칠세부동석 유교성향이 있었는지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있었다.

그러다 이사를 가던 날, 짐칸 트럭에 올라타며 알 수 없는 거대한 상실감에 가슴이 저릿했던 기억이 난다. 같은 동네로 이사를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으니까. 완벽한 비극의 오해였다.

그런데 이사 갈 때 짐 싣는 트럭이 왜 슬프게 우는지 아는가? '트럭트럭' 울어서 그렇다. (쓰바, 내가 쓰고도 어이가 없지만, 그 시절 내 슬픔의 무게는 딱 그 정도로 단순했다.)

나는 그때 이미 요즘 애들이 환장하는 '슬릭백' 스텝을 깽깽이 발로 밟으며 중력을 거스르던 1980년대의 힙스터였다.

가끔 서커스 유랑단이 찾아오던 그 고립된 마을에서, 나는 아침마다 어머니에게 백 원을 받아 쥐고 쭈쭈바를 향해 그 스텝으로 슈퍼마켓까지 순간이동을 하곤 했다.

참고로, 쭈쭈바를 두 번 빨면 뭔지 아는가? '쭈쭈쭈쭈바'다. (하아... 내 인생의 개그 감각은 85년 부곡리 하수구 똥물에 같이 떠내려간 게 틀림없다.)

그 시절 이모가 살던 청량리까지 1시간이면 주파하던 전철은, 망할 놈의 정차역이 개떼처럼 늘어난 지금은 최소 한 시간 반은 잡아야 하는 퇴보한 고철 덩어리가 되었다. 80년대식 빌라와 아파트들이 철도 관사촌 사이로 암세포처럼 증식해 가던 그 마을. 구조적으로는 꽤 낭만적이었지만, 구시대 일본의 잔여물과 개발도상국의 역동적인 부작용이 기형적으로 교배된 그 그린벨트는, 사실 우리를 보호하는 숲이 아니라 우리를 시대의 변방으로 격리하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과연 없어진 그 관사마을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100원짜리 쭈쭈바를 입에 물고 슬릭백으로 중력을 거스르려 했던 나는, 낭만이라는 포장지로 덮여있던 요람에서 배우며 자라고있었다.

우리가 살을 부대끼며 뛰놀던 그곳은 사실 철저히 일본이 파놓은 통제의 뼈대 위에, 천민자본주의가 시멘트를 들이부어 만든 테마파크였다. 삭월세 단칸방에서 다락방과 옆집 적산가옥을 올려다보며 아버지의 의식 속에 주입된 것은, 땀 흘리는 노동의 신성함이 아니라 '누군가의 목줄을 쥐고 연줄을 잡아야만 저 다락방을 탈출한다'는 날것의 폭력성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당신만의 100원짜리를 쥐고 어느 시대의 땅위를 슬릭백으로 아슬아슬하게 건너고 있는가? 혹시, 당신이 평생을 바쳐 영끌해서 들어간 그 번듯한 아파트 단지도, 계급의 이름과 간판만 바뀐 채 누군가의 피와 땀을 딛고 서 있는 21세기형 '관사마을'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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