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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헤르 여행, 힐튼 침대에서 폼 잡고, 카페 하파 2400원 찻집에서 영혼 챙긴 썰 | 유목적 시선 #01

이 글은 '유목적 시선'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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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컨트리뮤직의 한곡이 끝나고 다른곡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의 정적, 딱 그 정도의 적막감을 가지고 나는 모로코의 고속열차 '알 보라크'에 몸을 실었다. 프랑스 TGV 기술을 수입해 만들었다는 이 녀석은, 마치 자본주의의 욕망이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졸라게 매끄럽게 달렸다.

알 보라크의 식당코너

테이블 위에는 따듯한 에스프레소와 아이의 주스가 놓여 있다. 창밖 풍경은 시속 300km로 후퇴하고 있었지만, 내 의식은 어딘가 깊은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탕헤르 역. 아프리카의 관문이라 불리는 그곳의 언덕 위 하얀 집들은, 거대한 캔버스에 무심한 화가가 붓을 툭, 툭 찍어 바른 듯한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마치 "여기가 아프리카야, 이 촌놈아"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번 여행에서 나는 '가성비'라는 이름의 구질구질한 생활신조를 잠시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힐튼 호텔 킹룸. 그래, 인생 몇번안되는 호사다. 체크인을 위해 들어선 로비의 공기는, 잘 훈련된 호텔리어의 미소만큼이나 격식이 있었했다.


그곳에서 아들은 나이지리아에서 온 꼬마와 친구가 되었다. 언어? 그딴 건 필요 없었다. 그들은 마치 태초의 인류가 그랬듯, 혹은 어린이집 어딘가의 아이들처럼 본능적으로 서로를 알아봤다. 사회가 만들어낸 거대한 인공 구조물(호텔 로비) 안에서 국경을 초월해 뛰어노는 아이들.


나는 킹사이즈 침대에 누워 창밖의 바다를 보며 생각했다. "우와, 돈이 좋긴 좋구나." 이것은 완벽하게 다림질된 셔츠를 입었을 때 느끼는 안도감과 유사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자본주의의 단물만 빨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시 움직이자
현재 위치를 기록해 두었다. 지브롤터 해협이 내앞에 있구나



아랍어를 도통 알아볼수가 없어서 구글번역기를 돌려보았다. “페르디카리스 도시숲” 공원이다

우리는 호텔을 나와 시티 투어 버스에 올랐다. 택시 기사와 요금 흥정을 하며 감정노동을 하는 것보다, 이 2층 버스가 주는 익명성이 훨씬 편안했다. 버스는 페르디카리스 숲을 지났다. 19세기 미국 부호가 만들었다는 이 숲. 돈 많은 서양인이 만들어 놓은 숲에서 나는 묘한 데자뷰를 느꼈다.


캡스파탈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나는 최초의 국제 관리 등대. 캡 스파탈
캡 스파탈 등대. 절벽과 바다, 그리고 헐리웃 영화 세트장 같은 풍경. 거기서 우리는 호텔 로비의 그 나이지리아 가족을 다시 만났다. 우연? 아니,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 그저 복잡하게 얽힌 필연의 태엽이 딱 맞아떨어진 순간일 뿐.
지중해와 대서양이 교차되는 이곳이 지브롤터해협이다. “지중해”, “대서양”이라 써놓았다

해질녘 태양이 정확하게 이곳을 통과한다

해가 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하늘의 조명 스위치를 서서히 내리는 것처럼, 태양은 등대 조형물 사이로 완벽한 각도로 떨어졌다.

캡스파탈 등대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저 암벽위에 헐리웃이라 써놔도 믿을듯한 느낌
그렇다 난 캡스파탈 등대의 미로를 내려다 본다
캡스파탈 아래는 이국적 풍경의 레스토랑이 있다.

저녁은 다시 '알뜰한 소시민' 코스프레로 돌아왔다. 현지인 식당. 힐튼의 조식이 '잘 조율된 오케스트라'라면, 이곳의 타진 요리는 '거칠지만 영혼이 있는 델타 블루스'였다.


구운 가지와 토마토를 으깨어 마늘, 올리브유와 함께 볶아낸 요리 잘루크(Zaalouk)와 모로칸 카롯 샐러드(Moroccan Carrot Salad). 마치 한국의 단무지나 김치같은 사이드 디시라 생각하면 되는데 엄청 테크니컬하고 맛이 극락이다. 계속 달라고 했던 기억.

역시 모로코 음식하면 타진 요리가 최고다
식사용 빵 갈라서 이것저것 넣어먹으면 된다
가격은 착했고, 맛은 깊었다. 비싼 호텔에서 자고, 밥은 싼 곳에서 먹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챙길 수 있는 '알뜰 장부' 식 승리다.

호텔에 돌아와서 티타임
탕헤르의 밤은 이렇게 깊어간다



다음 날은 카페 하파(Café Hafa)로 향했다. 1921년부터 오픈. 비틀즈와 롤링스톤즈가 와서 죽치고 앉아 있었다는 곳. 계단식 테라스에 앉아 민트 티를 마셨다

단돈 15디르함(약2400원). 입안 가득 퍼지는 민트 향과 설탕의 단맛은, 마치 잊고 지내던 첫사랑의 기억처럼, 혹은 갓 구운 바게트의 속살처럼 부드러웠다.
힐튼 호텔 킹룸의 허세와 15디르함짜리 차 한 잔의 소박함. 이 극단적인 대비야말로 탕헤르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다.

카페 하파에서 나와 잠깐 걸으면 끝내주는 언덕이 나타난다

저기 스페인에서 넘어오는 크루즈 정박항을 바라보면서 선선한 바람을 맞았다


언덕을 내려오면 얼마후 메디나가 등장한다. 일종의 마을이다







메디나의 골목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스페인풍의 테라스와 아랍풍의 타일이 뒤섞인 이 도시의 혼종성. 여행이란 결국 균형을 잡는 일이다. 졸라게 비싼 침대에서의 하룻밤과, 두 다리로 걷는 골목길의 피로감 사이에서 말이다.

나이지리아 꼬마와 내 아들이 보여준 그 편견 없는 우정처럼, 탕헤르는 내 통장 잔고와 내 감성 사이에서 알뜰한 화해를 주선했다. 그리고 나는 15디르함의 낭만을 마시며, 저 멀리 보이는 스페인 땅을 향해 조용히 중얼거렸다.

"역시, 인생은 고기서 고기지만, 뷰는 공짜가 제맛이지."

담덕의 유용한 TIP

-숙소, 쫄지 말고 질러라:
- 맨날 컵라면만 먹을 순 없잖아? 하루 이틀은 힐튼(본문 참조) 같은 곳에서 배부른 돼지가 되어보자. 그 맛, 잊지 못한다. 나머지는 에어비앤비에서 버티면 된다. 그게 '밸런스'다.
-이동은 '버스' 타라, 두 번 타라:
- 택시 기사한테 비싼값 지불 당하고 "아임 코리안 바보" 인증하기 싫으면, 그냥 '시티 투어 버스' 타라. 48시간 동안 뺑뺑이 돌려주는데, 페르디카리스 공원이고 어디고 다 데려다준다.
- 먹는 건 '로컬'이 진리다:
- 카페 하파(Café Hafa): 비틀즈 형님들도 여기서 차 마셨다. 비싼 데 가서 인스타용 사진 찍지 말고, 여기서 15디르함 내고 폼을 잡아라.
- 메디나 식당: 관광객 비싸게 받는 식당 말고, 현지 형님들 바글거리는 곳으로 가라. 타진 맛이 다르다. 국물이 끝내줘요.
- 풍경은 '공짜'다:
- 메디나 언덕, 캡 스파탈 일몰. 입장료? 그런거 없다. 다리가 튼튼하면 이 세상 최고의 뷰는 다 공짜다. 걷자. 걸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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