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전체보기
토요일 오전의 공기는 언제나 약간의 나른함과 무책임함을 허락하는 듯한 농도를 띠고 있다. 갓 내린 커피의 검고 깊은 수면 위로 주말의 정적이 잠시 내려앉았다. 머그잔을 들고 무심코 창밖을 내다본다. 저 멀리, 왕복 4차선 도로 위로 샛노란 색을 뒤집어쓴 운전학원 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그러나 어딘가 묘하게 주저하는 궤적을 그리며 굴러가고 있다. 마치 거대한 아스팔트에 잘못 던져진, 겁먹은 초식동물의 엉덩이처럼 보인다. 그 노란색의 느릿한 움직임을 눈으로 좇고 있자니, 머릿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나의 기억 상자 하나가 열렸다.
노란색 연습차량
세상은 저 노란 차를 그저 '도로 주행 연습 차량'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겪어낸 지금의 내 시선으로 보자면, 저것은 완벽하게 세팅된 하이패스 티켓이다. 저 차 안에는 시스템에 순응하고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안전한 온실이 있다. 조수석에는 언제든 내 실수를 덮어주고 대신 브레이크를 밟아줄 보디가드(강사)가 앉아 있다.운전면허증이라는 것은 사실 도로교통법이라는 시스템에 접속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증서다. 그리고 운전 전문 학원은 그 인증서를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발급받을 수 있도록 최적화된 하이패스 티켓 판매소다. 현재 운전 전문 학원의 수강료는 대략 80만 원에서 100만 원 선을 오르내린다. 적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그 돈을 지불한다. 왜냐하면 그 100만 원은 단순히 '운전 기술'을 배우는 값이 아니라, 내 시간과 멘탈, 그리고 무엇보다 '실패할 확률'을 헷징(Hedging)하는 프리미엄 보험료이기 때문이다. 학원이라는 시스템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국가는 더 이상 당신의 서툰 클러치 조작을 자비롭게 봐주지 않는다. 그것을 나는 스무 살 무렵, 너무도 처절하게 깨달았다.
공터의 마진콜, 그리고 붕괴된 자아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던 그 시절, 내 주머니 사정은 텅 비어 있었다. 학원비 낼 돈은 없었고, 남들 다 따는 면허증은 당장 내 손에 쥐고 싶었다. 그것이 스무 살의 조급함이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그 시절 흔해 빠졌던 'K-아버지표 야매 연수'였다. 아버지는 나를 흙먼지가 날리는 변두리 공터로 끌고 갔다.아버지의 교수법은 몹시 원초적이었다. 2종 오토 도전하면서 대체 그놈의 감은 어디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내 몸은 뻣뻣하게 굳었고, 어색한 움직임을 냈다. 그렇게 나는 무방비 상태로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장이라는 냉혹한 전장에 던져졌다. 결과는 참혹했다. 기능 시험 4회 낙방, 도로 주행 2회 낙방.
T자 코스에서 탈선하고, 주치하다가 차가운 기계음이 "불합격입니다"를 통보당했다. 시험관들의 무심한 눈빛은 나를 마치 불량품 취급하는 듯했다. 고작 면허 시험 6번 떨어진 게 대수냐고 할 수 있겠지만, 갓 사회에 발을 내디딘 스무 살에게 그것은 세상 전체가 나를 거부하는 듯한 거대한 정신적 트라우마였다. 바스락거리며 부서져 내린 알량한 자존심을 주워 담을 여력조차 없었다. 어찌하여 결국 면허증을 받아 든 내 속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시스템을 무시한 자의 필연적 파국
이제 와서 과거의 그 뼈아픈 헛발질을 분석해보면, 그것은 철저한 로직(Logic)의 부재와 비용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필연적인 파국이었다.운전면허 시험은 '운전을 잘하는가'를 묻는 낭만적인 테스트가 아니다. 지정된 센서의 위치를 파악하고, 핸들을 몇 바퀴 돌려야 차체가 궤도에 진입하는지를 정확히 수행해내는 기계적인 알고리즘 검증 과정이다. 투자시장에 투자 프레임워크가 필수적이듯, 면허 시험장에도 그들만의 철저한 공식이 존재했다.
하지만 나는 그 공식을 돈 주고 살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맨몸으로뛰어든 불나방과 같았다.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고 '열정'과 '젊음'이라는 싸구려 연료만 태워대며 맨땅에 헤딩을 한 것이다. 실무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미 세상은 자동변속기로 재편되고 있었다. 1톤 트럭인 포터나 봉고조차 EV(전기차) 모델이 대세가 되면서 수동 변속기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올 것이라는 거시적 트렌드 따위는 읽지 못했다. 그저 '남자는 1종 보통'이라는, 근거도 실체도 없는 수컷들의 가오(Gao)에 지배당하고 있었을 뿐이다. 학원비를 아끼려다 치른 6번의 응시료와 교통비, 그리고 산산조각 난 멘탈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나는 그 시절 가장 멍청하고 비싼 이자를 치른 셈이었다.
가오가 지배한 촌극
자, 여기까지가 보통 사람들이 과거의 실패를 포장할 때 쓰는 그럴싸한 변명이자 자기 합리화다. '그때는 돈이 없었지', '그래도 그 맨땅에 헤딩하던 깡다구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 같은 달콤한 회고록.하지만 커피가 식어가는 이 시점에서 내 안의 밑바닥을 더 말해보자. 진짜 솔직해져 볼까? 몇 년이 지나고 나서,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1종 보통 면허를 다시 시험 봐서 땄던 그 행위. 나는 그것을 속으로 은근히 자랑스러워했다. 결국 오늘날 나에게 필요한 1종 보통 면허고 포기하지 않고 쟁취해낸 나 라는 이야기로 포장하면서 말이다.
아니다!! 그건 그저 자기 위안에 불과했다.
내가 1종 보통이 당시 왜 필요했나? 짐을 싣고 상하차 알바라도 뛸 계획이었나? 아니. 나는 그저 '2종 오토땄다'는 꼬리표가 내 무의식을 긁어대는 것을 견디지 못했을 뿐이다. 세상 그 누구도 내 면허증 숫자에 관심이 없는데, 오직 나 혼자만 그 콤플렉스에 갇혀 섀도복싱을 하고 있었다.
몇 년 뒤에 그 시험을 다시 준비하고 치르면서 내가 낭비한 시간과 에너지는 또 얼마인가? 시장의 흐름을 읽고 생산적인 일에 투입해야 할 20대의 황금 같은 에너지를, 고작해야 기어봉 하나 폼나게 조작해보겠다고, 그 죽일 놈의 수컷 카르텔이 만들어낸 허상에 꼴아박은 것이다. 나는 내 상처를 치유한 것이 아니라, 상처받았던 내 자아를 한 번 더 학대하며 "거봐, 너도 클러치 밟을 줄 아는 수컷이잖아"라며 스스로를 기만했다. 철저한 자기만족을 위해 '도전'이라는 성스러운 단어를 가져다 쓴 셈이다. 그 행위는 어떤 통찰도, 성장도 담보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과거의 미련에 발목 잡혀 뻘짓을 할 수 있는 인간인지를 증명한 코미디였다.
'실패를 딛고 일어선 의지의 사나이'라는 환각을 사기 위해 내가 지불한 기회비용은, 결국 지갑 한구석에서 썩어가는 '1종 보통'이라는 가장 얄팍하고 무의미한 카드로 전락해버렸다. 그냥 몇년후에 무사고 운전으로 1종 보통으로 갱신하면 되는 건데 말이다
알고리즘의 시대
남은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는다. 입안에 쌉쌀한 맛이 맴돈다. 창밖의 노란 차는 이미 코너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인간이란 참으로 이상한 생물이다. 무의미한 짓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속에 응어리진 무언가를 해소하기 위해 기꺼이 멍청한 짓을 저지른다. 아마 지금도 차트를 들여다보며 완벽한 타점을 계산해내려는 지금의 나 역시, 거대한 시장 앞에서는 스무 살 공터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 안에서 내 알량한 자아를 확인하고 싶어 끊임없이 발버둥 치는 것일 테니.
거실 저편에서 세 살배기 아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훗날 저 아이가 자라서 운전대를 잡고 싶어 하는 스무 살이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먼지 날리는 공터로 데려가 내 아버지가 그랬듯 소리를 지르며 '수컷의 낭만'을 물려줄까?
아니. 나는 군말 없이 내 신용카드를 꺼내 학원 등록비 100만 원을 결제해 줄 것이다.
맨땅에 헤딩하며 깨지는 건 내 나의 멍청함으로 족하다. 지금은 낭만과 깡으로 시스템을 이길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시스템이 제공하는 가장 안전하고 빠른 방법에 올라타는 법. 그것이 그동안 이 세상에서 내가 깨닭은 가장 정확하고 냉정한 진리다. 비록 그 효율성의 세계에는, 홀로 도전하며 긴장을 느끼던 풋풋함과 부끄러움은 영원히 없어지겠지만 말이다.
나의 교훈
운전면허 취득의 실용적 알고리즘
• 시스템 이용료(학원비): 현재 운전 전문 학원 수강료는 단순한 기술 습득 비용이 아니라 실패 확률과 멘탈 소모를 헤징(Hedging)하는 프리미엄 보험료다.• 독학의 기회비용: 소위 '야매 연수'와 반복되는 불합격은 응시료, 교통비, 그리고 산산조각 난 자존심이라는 가장 비싼 이자를 치르게 한다.
• 7년의 우회로: 2종 보통(수동) 면허 보유자가 7년간 무사고를 유지할 경우, 별도의 주행 시험 없이 신체검사만으로 1종 보통 갱신이 가능하다. 굳이 젊은 날의 에너지를 기어봉과의 사투에 꼴아박지 않아도, 시간이라는 자본이 가져다주는 '무혈입성'의 기회가 있다.
• 거시적 트렌드: 화물차조차 EV(전기차) 및 자동변속기로 재편되는 추세에서, 실무적 근거 없는 '1종 가오'는 실익 없는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 최적의 경로: 낭만과 깡으로 시스템을 이기려 하기보다, 시스템이 설계한 가장 안전하고 빠른 알고리즘에 올라타는 것이 시대에 부합하는 냉정한 효율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