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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에서 딱 30분, 현지인만 꽁꽁 숨겨둔 '꽃의 도시' 모하메디아 | 유목적 시선 #04


유목적 시선 시리즈 
디르부카 와 모니카 해변


모하메디아라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완벽한 가이드북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카사블랑카와 라바트라는 두 거대 도시 사이에 무심하게 툭, 그러나 아주 절묘하게 끼워져 있는 이 도시는 이른바 '꽃의 도시'로 불린다. 자본의 욕망이 펄떡이는 카사블랑카의 빡센 번잡함에서 빠져나와 30분 정도 차를 달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 쾌적하고 조용한 공기에 항복하게 된다.


물론, 아름다운 해변과 정원만 있는 건 아니다. 모로코 최대의 정유 시설 SAMIR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석유의 수도'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낭만적인 해양 스포츠와 밥줄을 쥐고 있는 묵직한 에너지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셈이랄까. 대서양의 파도 소리를 브금(BGM) 삼아 모니카 해변을 걷다가 신선한 해산물을 씹는 일은, 꽤나 근사하고 실용적인 주말의 선택지다.

접시 위에 놓인 것은 살구 치킨 타진(Tagine de Poulet aux Abricots)이다. 닭고기와 말린 살구라니, 처음엔 누군가의 짓궂은 농담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모로코에서 아주 진지하게 다뤄지는 '단짠'의 정수다.

양파를 인내심 있게 볶아낸 '트파야(Tfaya)'와 시나몬이 닭고기의 살결 사이로 스며들 때, 살구는 조용히 수분을 머금고 부풀어 오른다. 그 위를 바삭하게 튀긴 아몬드가 덮는다. 한국의 갈비찜이 정장을 쫙 빼입은 중년 신사라면, 이 타진은 낯선 골목에서 마주친 매혹적인 이방인 같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풍미는 깊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자두(Pruneaux)를 넣은 버전까지 즐기는 이들의 미각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고단수다.


뜨거운 요리 뒤에는 차가운 요리가 오는 법이다. 우주의 법칙처럼. 이것은 모로코식 해산물 샐러드(Salade de Fruits de Mer)다.

잘 삶아진 새우와 부드러운 오징어가 아삭한 옥수수와 뒤섞여 있다. 가장자리에는 오렌지 슬라이스가 무심하게 툭툭 놓여 있는데, 이게 또 기가 막힌 킥(Kick)이다. 해산물의 비릿함을 오렌지의 산미가 날렵하게 낚아채는 구조랄까. 모로코 식탁의 쌉싸름한 블랙 올리브와 토마토가 곁들여진 이 접시는, 올리브유와 레몬즙이라는 아주 기본적이고 정직한 룰 안에서 작동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차갑게 식힌 화이트 와인 한 잔과 이 샐러드가 있다면, 세상의 자잘한 근심 따위는 한 시간쯤 미뤄둬도 아무 문제 없다.
모둠 해산물 그릴 플래터. 현지어로는 '프뤼 드 메르(Fruits de Mer)'. 바다의 과일이라는 뜻이다. 꽤나 낭만적인 작명 아닌가.

그릴의 그을음이 선명한 오징어 링과 대하, 그리고 흰살생선들이 접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 곁들여진 자알룩(으깬 가지 딥), 텍투카(구운 피망 샐러드), 하리사(매운 고추 페이스트)는 이 요리를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같은 역할을 한다. 코브즈(Khobz) 빵을 툭 뜯어 생선 살과 자알룩을 얹고 레몬즙을 떨어뜨려 입에 넣는다. 입안에서 지중해와 대서양이 동시에 출렁이는 기분이다. 팩트만 말하자면, 모로코 해안 도시에서 이 생선 구이(푸아송 그리에)를 시키는 건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는, 대단히 안전하고도 훌륭한 투자다.
아프리카 북부 태양의 파편을 머금은 고당도 수박

길가에 무심하게 쌓인 모로코 수박. 보통 자고라(Zagora)나 타타(Tata) 같은 남부 사막에서 온 녀석들이다. 이 수박의 압도적인 달콤함에 대해 말하자면, 농업 과학의 냉혹하고도 아름다운 승리라 할 수 있다.

물이 적은 가혹한 '물 스트레스' 환경에서, 식물은 살아남기 위해 당분을 한껏 끌어올린다. 사막의 뜨거운 낮이 강렬한 태양으로 당을 만들고, 차가운 밤의 큰 일교차가 그 당을 소모 없이 열매에 봉인해버린다. 철분과 미네랄이 풍부한 붉은 흙(Red Soil)은 '므렘린(Mremmlin)'이라 불리는 특유의 사각거리는 식감을 부여한다. 한국의 하우스 수박이 11~12 브릭스의 온실 속 화초라면, 이 녀석들은 13~15 브릭스를 넘나드는 사막의 전사들이다. 수분을 덜 먹고 자란 놈이 비교도 안 되게 더 달다니. 삶의 아이러니는 때론 달콤한 과즙의 형태로 우리를 찾아온다.
해변에서 물놀이 후 에너지 보충

커피도 한잔

저 배까지 낭만의 150m 바다 수영

모하메디아의 모니카 해변(Plage Monica), 혹은 사블레 도르(Sablé d'Or) 해변. 둥둥 떠 있는 작은 배들을 향해 사람들이 맨몸으로 헤엄쳐 간다. 방 한구석에 멍하니 앉아 스마트폰이나 뒤적이는 우리의 주말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나 역시 처조카 '자카리아'와 저기까지 헤엄쳐서 가서 놀았다. 한국에서는 안전사고 우려로 제트스키 탄 안전요원이 쏜 살같이 달려오겠지만 여기서는 서로가 그저 안전요원이다. 한 150m헤엄쳐 가야한다. 처음에는 가야하나? 멈칫했지만 이미 몸을 담군후부터는 가기로 결심을 굳혔다. 수십명의 사내들이 저기서 놀고있으니 나도 어울려야 한다는 분위기때문이었다. 배에 올라가서 백플립으로 다이빙 했다.'풍덩!!' 물속에서 고요와 혼돈이 교차했지만 지금생각해보면 인생에 몇번없는 경험 아니겠는가.

이곳 사람들은 개인 소유의 꼬마 배나 플레져 보트를 띄워두고 그 위에서 다이빙을 하거나 낚시를 한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까지 굳이 헤엄쳐 간다는 건 꽤나 고단한 육체의 노동을 요구하지만, 그들은 기꺼이 그 수고로움을 감내하며 자연 속에서 논다. 잔잔한 파도 위로 떠 있는 수많은 배들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이곳의 시간마저 조금 느리고 너그럽게 흘러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바위 틈에서 문어도 잡아보고

리듬감 쩔던 모로코 보이

해맑은 소녀

다들 꾸밈없이 밝다

순수하고 솔직한 사람들

해변의 청년들이 스스럼없이 얽혀 웃고 있다. 무슬림은 폐쇄적이고 엄격할 거라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어왔던 얕은 편견이 경쾌하게 부서지는 순간이다.

모로코, 특히 이런 해안 도시들은 스페인과 불과 14km 떨어진 지리적 감각만큼이나 개방적이고 지중해적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복잡한 격식이나 깍쟁이 같은 거리두기가 아니다. 그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당신, 그리고 함께 나누는 유대감('Al-Baraka')이다. 처음 본 사이라도 금방 친구가 되고 남녀가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이 '따뜻한 오지랖'은, 사실 이슬람의 핵심 가치인 타인에 대한 관용이자 환대다. 치열한 눈치게임에 지친 한국인들에게 이 꾸밈없는 미소는 꽤나 묵직한 한 방으로 다가온다. 진짜 사람 냄새 나는 건 우리가 아니라 저들일지도 모른다.

소년의 무릎 위에는 '다르부카(Darbuka)'가 놓여 있다. 진흙과 가죽으로 만든 이 단순한 악기가, 소년의 손끝에서 거의 주술적인 리듬을 토해낸다.

화려한 아랍의 선율, 베르베르인의 묘하고 반복적인 토착 박자, 그리고 서아프리카의 역동적인 비트가 뒤엉킨 모로코 특유의 멜팅 팟. 여기에 곁에 앉은 가족들이 쏟아내는 높고 날카로운 박수 소리가 얹어지면, 해변은 순식간에 '다카 마라크시아(Dakka Marrakshia)'라는 즉흥 합주의 무대가 된다. 이 아이들은 굳이 학원에 앉아 악보를 보며 4/4박자를 배우지 않는다. 가족 모임에서, 해변에서, 삶 속에서 피 안에 리듬을 우겨넣는다. 뜨거운 태양, 모래알의 감촉, 그리고 날것의 그루브. 완벽한 살아있음의 조건이란 대개 이런 것들이다.

돌아가는길에 공수한 자동차 짐칸에 타고 낭만있게 돌아갔다
선선한 바람 맞으며 옥상에서 별보며 휴식 

마무리하며

모로코의 식탁과 해변을 관통하는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결핍과 야성이 만들어낸 기막힌 풍요로움'이다.

사막의 가혹한 건조함은 수박의 15브릭스 당도를 멱살 잡고 끌어올리고, 거친 대서양의 바람은 가장 신선한 그릴 플래터를 구워낸다. 우리는 종교와 규율이 저들의 일상을 뻣뻣하게 억압할 거라 우쭐대며 짐작하지만, 정작 체면과 매너라는 보이지 않는 틀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는 건 와이파이와 타인의 시선에 중독된 우리 자신이다.

20년 넘게 일과 캔들 차트의 오르내림에 일희일비하며, 냉혹한 변동성 속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쳐왔다. 하지만 인생의 진짜 완벽한 장단은 모니터 속 차트의 방향성이 아니라, 어쩌면 저 무계획적인 낯선 해변의 박수 소리와 타진 냄비의 열기 속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까놓고 말해, 인간의 영혼은 정교하게 세팅된 매매 로직보다 해변에서 맨발로 두드리는 북소리에 더 격렬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법이다.

그러니 가끔은 하리사 소스처럼 맵게, 오렌지를 곁들인 샐러드처럼 상큼하게 삶의 방향을 비틀어보는 것도 꽤나 근사한 일이다. 각잡힌 셔츠와 노트북은 잠시 서랍에 처박아두고, 오늘 저녁엔 삶의 텐션을 느슨하게 푼 채 차가운 맥주 한 캔을 따야겠다. 어차피 인생이란 한 치 오차 없는 차트가 아니라, 소년의 다르부카 리듬처럼 묘하고도 신나게 흘러가는 것일 테니까.

여행 요약 정보

모로코 미식 & 주문 팁

타진(Tagine)과 그릴 플래터 먹는 법: 진흙 냄비에 저온 조리한 타진이나 해산물 구이를 먹을 때는 전통 빵인 '코브즈(Khobz)'를 손으로 뜯어 소스나 생선 살, 자알룩(으깬 가지 딥)과 함께 곁들여 먹는 것이 현지 방식입니다.

치킨 살구 타진(단짠 요리): 닭고기에 말린 살구, 양파 볶음(트파야), 계피, 견과류를 얹은 요리로, 자극적이지 않고 풍미가 깊어 한국인 입맛에 아주 잘 맞습니다. (자두를 넣은 버전도 추천합니다.)

해산물 샐러드: 차갑게 먹는 에피타이저로, 접시에 함께 나오는 오렌지 슬라이스가 해산물의 비린 맛을 잡고 상큼함을 끌어올리는 핵심 킥입니다.
현지 과일 100% 즐기기

선인장 열매(한디야/카르무스): 수분이 많고 달콤해 갈증 해소에 최고입니다. 단, 겉면에 미세하고 날카로운 가시가 있으니 절대 맨손으로 만지지 말고 길거리 상인이 까주는 알맹이만 드세요. 씨앗은 씹거나 삼켜도 무방합니다.

사막 수박(자고라/타타 지역): 붉은 사막 토양과 큰 일교차, 건조한 기후(물 스트레스) 덕분에 한국 수박보다 수분은 적지만 당도는 훨씬 높습니다(13~15 Brix). 특유의 사각거리는 식감이 특징이니 기회가 되면 꼭 맛보세요.
모하메디아 여행 & 로컬 문화

모하메디아(Mohammedia): 카사블랑카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꽃의 도시'이자 항구 도시입니다. 복잡한 대도시를 벗어나 해산물을 즐기며 모니카 해변이나 사블레 도르 해변에서 여유를 찾기 좋습니다.

개방적인 소통 문화: 무슬림 국가에 대한 엄격한 선입견과 달리, 특히 해안 도시의 젊은 층은 낯선 사람과도 남녀 구분 없이 농담을 주고받고 허물없이 어울리는 굉장히 개방적이고 정 많은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흥 해변 축제(다카 마라크시아): 모로코 사람들은 해변 등에서 모이면 전통 북인 '다르부카'와 독특하고 날카로운 모로코식 박수를 치며 즉흥적인 합주를 즐깁니다. (아랍+베르베르+아프리카가 섞인 독특한 리듬이 특징입니다.)

사실 확인 출처 (Sources)

본문 내용의 과학적, 문화적, 지리적 사실을 뒷받침하는 직접 페이지 주소입니다. 브라우저에서 직접 접속하여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물 스트레스(Water Stress)와 과일 당도 증가의 과학적 원리 사막 수박이 더 단 이유에 대한 농업 과학적 근거 (수분 결핍이 식물의 당 대사를 촉진하여 열매의 당도를 높이는 원리)


출처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 NCBI / 농업 저널): "Effect of Deficit Irrigation on Fruit Quality..."

링크: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8069503/ (농업 과학)

2. 모하메디아(Mohammedia) 지리 및 SAMIR 정유 시설 정보 카사블랑카 근교의 휴양지이자 모로코 최대의 에너지/정유 시설(SAMIR)이 있는 도시에 대한 지리적 사실

출처 (Britannica 백과사전): Mohammedia, Morocco


링크:
https://www.britannica.com/place/Mohammedia (지리 및 산업 정보)

3. 다카 마라크시아(Dakka Marrakchia)와 리듬의 멜팅팟 구조 모로코 특유의 아랍, 베르베르, 아프리카가 혼합된 즉흥 음악 및 축제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문화적 사실


출처 (모로코 문화 전문 포털 / Wikipedia 교차): Music of Morocco (Dakka Marrakchia 섹션)

링크:
https://en.wikipedia.org/wiki/Music_of_Morocco (문화사)

4. 모로코 미식: 치킨 살구 타진과 트파야(Tfaya) 단짠 조화의 핵심인 모로코 고유의 양파 캐러멜라이징 소스 '트파야'와 말린 과일(살구/자두)을 이용한 타진 조리법 사실

출처 (TasteAtlas - 세계 미식 백과): Tagine tfaya

링크:
https://www.tasteatlas.com/tagine-tfaya (레시피 및 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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