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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크스의 술 그리고 원피스 루피가 건넨 진심 | 비평과 비명사이 #05

이 글은 '비평과 비명사이'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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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를 거스르려는 자본주의의 맹렬한 헛발질

어떤 것들은 너무 거대하고 비현실적이어서, 도무지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우주의 끝없는 팽창 속도라든가, 복잡하게 얽혀버린 글로벌 마켓의 종잡을 수 없는 차트 흐름, 혹은 무려 1,100화를 훌쩍 넘기고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어느 일본 해적 만화의 연재 횟수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 늙고 병들며 쇠락하는 엔트로피의 법칙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만화 속 고무인간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여전히 소년의 얼굴을 하고 바다를 누빈다. 문제는 이 기이한 타임라인을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자본주의의 총아가 현실의 3D 세계로 끄집어냈을 때 발생한다. 솔직히 넷플릭스 수뇌부들은 지금쯤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초침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려 있을 것이 분명하다.

시즌 2가 채 공개되기도 전인 2025년 8월, 그들은 부랴부랴 시즌 3 제작을 확정 지었다. 공식 타이틀은 <원피스: 알라바스타 전투(The Battle of Alabasta)>. 2027년 공개를 목표로 삼은 이들은, 시즌 2 촬영이 끝나자마자 배우들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몰아넣고 2026년 6월까지 숨 돌릴 틈 없는 ‘백투백(Back-to-back)’ 촬영을 돌리고 있다. 왜 이토록 조급하게 구는 걸까?

답은 너무나도 생물학적이고 촌스럽다. ‘배우들이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미 역의 에밀리 러드는 이미 33세에 접어들었고, 앳된 소년 같았던 루피 역의 이냐키 고도이는 하루가 다르게 어깨뼈가 굵어지며 짙은 남성미를 뿜어내는 20대 청년이 되어가고 있다.

<기묘한 이야기>에서 귀여운 자전거 꼬마들이 어느새 수염 덥수룩한 아저씨로 역변해 나타났을 때 시청자들이 느꼈던 그 기묘한 인지부조화를, 넷플릭스는 뼈저리게 학습한 것이다. 작중 시간은 기껏해야 몇 달 흘렀는데, 루피가 산전수전 다 겪은 해병대 전역자 같은 포스를 풍기면 곤란하지 않은가. 결국 이 거대한 실사화 프로젝트는 원작의 장대한 서사를 스크린에 옮기는 예술적 도전을 넘어, 인간의 노화라는 피할 수 없는 생물학적 한계와 벌이는 맹렬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속도전이 되어버렸다.

어느 라이트 유저의 건조한 항해일지

나는 이 거대한 해적들의 서사시에 내 영혼의 단 한 조각도 갈아 넣은 적이 없는 부류의 인간이다. 학창 시절의 나는 땀 냄새가 묵직하게 배어 있는 <슬램덩크>의 코트 위나, 근육과 기가 직관적으로 격돌하는 <드래곤볼>의 단순명쾌한 세계에 더 끌렸다.

<원피스>의 그 복잡하고 과장된, 이른바 '눈깔 괴물'들이 튀어나와 빽빽하게 지면을 채우는 작화는 도무지 내 체질이 아니었다. 그림체부터가 일종의 거대한 장벽이었다고나 할까. 게다가 그 끝을 알 수 없는 방대한 분량은, 시작하기도 전에 사람의 진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나에게는 만화책 수십 권을 책상 한편에 성벽처럼 쌓아두고 밤을 새워가며 시력과 맞바꿀 만한, 그런 종류의 사치스러운 시간적 여백이 존재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나는 철저한 ‘라이트 유저’였다. 복잡하게 얽힌 100권짜리 서사보다는, 기승전결이 깔끔하게 재단되어 120분 만에 암전과 함께 크레딧이 올라가는 영화의 효율적인 포맷이 내 삶의 템포에 훨씬 더 잘 맞았다. 이 만화가 아직도 연재되고 있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들었을 때, 그저 "아, 일본 출판계의 징글징글한 연금술이 아직도 작동하고 있군" 하고 코웃음을 치며 지나쳤을 뿐이다. 뒤늦게 호기심이 동해 한 번 들춰볼까 싶었던 적도 있지만, 역시나 그 특유의 번잡한 화풍과 소화불량을 일으킬 듯한 압도적인 분량 앞에서 나는 얌전히 책장을 덮고 뒷걸음질 쳤다. 내 삶의 질량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무거웠으므로, 타인의 바다까지 짊어질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창조주의 변태적 집요함과 글로벌 용병들의 조화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작년에 무심코 넷플릭스의 재생 버튼을 누른 이후, 나는 홀린 듯이 시즌 1을 끝내고 올해 기어이 시즌 2까지 시청을 완료해 버렸다. 그림체에 대한 거부감은 3D 현실 세계의 질감으로 치환되면서 자연스럽게 휘발되었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오다 에이치로라는 작가가 30년 가까이 쌓아 올린 세계관의 압도적인 무게감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소년 만화의 얼개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어떤 미치광이 건축가가 병 속의 배(Ship in a bottle)를 조립하듯, 기발함을 넘어선 '변태적인 집요함'으로 핀셋을 쥐고 직조해 낸 거대한 세계의 모형이었다. 하늘을 나는 섬, 바다 밑 만 미터의 왕국, 사막 국가의 내전과 비밀 범죄 조직의 암투. 처음에는 기괴하게 보이던 캐릭터들의 과장된 설정도, 그 이면에 촘촘하게 깔린 정치적, 사회적 텍스트와 맞물리는 순간 소름 돋는 설득력을 획득했다.

게다가 이 실사판의 영리함은 캐스팅에서 정점을 찍는다. 멕시코 출신의 이냐키 고도이(루피), 일본의 무술 장인 아라타 맛켄유(조로), 인도계 영국인 엘리트 차리트라 찬드란(비비 공주), 스페인 억양이 섞인 태즈 스카일러(상디)까지. 인종과 국적을 제멋대로 뒤섞어 놓은 이 다국적 용병들은, 각자의 억양이 묻어나는 유창한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원작자가 농담처럼 던졌던 "루피는 멕시코, 조로는 일본, 상디는 프랑스인일 것"이라는 설정을, 자본주의의 괴물 넷플릭스가 말 그대로 현실에 '구현'해버린 것이다. 이질적인 문화권의 배우들이 하나의 배에 올라타, "바다에 나오면 누구나 동료"라는 만화적 대사를 칠 때, 나는 묘한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만화의 실사화가 아니라, '세계는 결국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는 무척이나 낭만적이고도 불온한 명제를 영상으로 증명하려는 어떤 거대한 사회학적 실험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남의 바다에서 길을 잃는가

시즌 3의 주 무대가 될 '알라바스타'는 단순한 악당과의 결투가 아닐거다. 그것은 거대한 사막 왕국에서 벌어지는 내전과 정치적 음모, 그리고 국가가 붕괴해 가는 과정을 막으려는 한 왕녀의 처절한 투쟁을 다루는 치밀한 스릴러에 가까울거라본다.

조 맨가니엘로 같은 묵직한 할리우드 배우가 범죄 조직의 보스 '크로커다일'로 합류하고, 러시아 모델 출신 레라 아보바가 미스터리한 '니코 로빈'으로 등장한다는 소식은, 이 드라마가 더 이상 아이들의 해적 놀이가 아님을 선언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풀리지 않는 끈적한 의문이 하나 남아 있다. 만화라면 질색을 하고 효율성만을 따지며 살아왔던, 적당히 건조하고 적당히 때 묻은 나라는 인간이, 어째서 이토록 비현실적인 고무인간의 여정에 몰입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넷플릭스의 매끄러운 각색과 자본력 때문일까? 아니면 내 안의 어딘가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침전되어 있는 미지의 바다에 대한 막연한 갈증 같은 것이 남아 있었던 걸까.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화면 속에서 서로의 언어로, 아니 하나의 공통된 언어로 상처를 드러내고 연대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세계가 하나라는 거창한 감각 이전에 지독한 고독을 느끼고 있다는것일거다. 모두가 저마다의 알라바스타 사막을 헤매고 있는 이 복잡하고 피곤한 현실 세계에서, 조건 없는 동료애라는 그 만화적인 판타지가 너무나도 날카롭게 현실의 결핍을 찔러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킥이 된 노래, 그리고 닻을 내린 진심

결국 내가 이 기나긴 의문에 대한 힌트를 얻은 것은, 시즌 2에서 루피가 거대한 고래 라분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바로 그 참신하고도 투박한 장면에서였다.

루피 역의 이냐키 고도이는 결코 노래를 잘 부르지 않았다. 매끄럽게 보정된 스튜디오의 음원이 아니라, 삑사리가 날 듯 불안한 음정과 엉성하게 몸을 흔들거리며 부르는 <빙크스의 술(Binks' Sake)>이었다. 하지만 50년 동안 바위벽에 머리를 찧으며 상처 입은 고래를 멈춰 세운 것은, 세상 어떤 화려한 기교나 값비싼 마이크로 정제된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괴로운 일이 있어도 내일의 해는 뜨니 웃으며 바다로 나가자"는, 바보 같을 정도로 단순하고 묵직한 '날것의 진심'이었다.

그 투박한 라이브 음성이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순간, 나는 내가 왜 이 방대하고도 변태적인 세계관에 항복해 버렸는지를 정확히 깨달았다. 세련된 연출과 막대한 자본력 뒤에 숨겨져 있던 것은, 결국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고독을 위로하려는 작가의 징글징글한 인간애였던 것이다.

화려한 액션도, 기발한 세계관도 결국은 핑계에 불과했다. 내가 스크롤을 멈추고 기어이 2027년의 시즌 3를 기다리게 된 진짜 이유는 하나다.

목이 쉰 멕시코 청년이 엉망진창으로 부르던 그 투박한 <빙크스의 술>이,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나의 건조한 일상 한가운데로 기어이 비집고 들어와 닻을 내려버렸기 때문이다.

자료 출처 


1. 시즌 2 주요 캐스팅 공식 발표 (조 맨가니엘로, 레라 아보바 등)

• 내용: 조 맨가니엘로(크로커다일), 레라 아보바(니코 로빈), 차리트라 찬드란(비비 공주)의 캐스팅은 2024년 9월 '넷플릭스 긱드 위크(Geeked Week)'를 통해 공식 발표된 사실입니다.

• 출처 :https://www.reddit.com/r/OnePiece/comments/1foem16/one_piece_meet_the_new_season_2_cast_geeked_week/?tl=ko


2. 시즌 2 및 시즌 3 '백투백(Back-to-back)' 연속 촬영 및 케이프타운 로케이션

• 내용: 배우들의 노화(특히 아역/소년 캐릭터)를 방지하기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시즌 2와 시즌 3를 연이어 촬영한다는 유력 매체들의 보도와 배우들의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 출처 (넷플릭스 공식 기사):

https://www.netflix.com/tudum/articles/one-piece-renewed-season-3

(기사 본문 내 케이프타운 세트장 촬영 및 향후 알라바스타 사가의 장기 제작 계획에 대한 프로듀서 인터뷰 포함)

3. 원작자 오다 에이치로의 '캐릭터 국적' 공식 설정

• 내용: 본문에서 언급된 "루피는 멕시코, 조로는 일본, 상디는 프랑스인일 것"이라는 국적 설정은 원작 만화책 단행본 SBS(독자 질문 코너)에서 원작자가 직접 밝힌 내용으로, 넷플릭스가 이를 실사화 캐스팅에 적극 반영했습니다.

• 출처 (One Piece Wiki - SBS Volume 56 아카이브):

https://onepiece.fandom.com/wiki/SBS_Volume_56

(독자의 "밀짚모자 일당의 국적은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오다 에이치로의 직접 답변 영문 번역본 확인 가능)

4. 배우 나이 (에밀리 러드)

• 내용: 나미 역의 에밀리 러드는 1993년 2월 24일생으로, 현재(작품 촬영 시점 기준) 30대에 접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 출처 (IMDb 에밀리 러드 프로필):

https://namu.wiki/w/%EC%97%90%EB%B0%80%EB%A6%AC%20%EB%9F%AC%EB%93%9C


5. 넷플릭스 빙크스의 술 노래


• 출처 (The One Piece Cl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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