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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속 20년 된 노란 티켓이 말해주는 도쿄 혼자 여행의 진짜 가치
2006년. 돌이켜보면 그것은 묘하게 비현실적인 연도다. 내 귓가에는 종일 무거운 헤드셋이 얹혀 있었고, 싸구려 파티션 너머로는 의미 없는 콜센터의 백색소음이 마른 먼지처럼 떠다니던 시절이었다.
텔레마케팅이라는 노동은 본질적으로 타인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지루한 과정이다. 언어와 소리만으로 실체 없는 익명의 인간들을 상대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영혼의 가장자리가 바싹 말라 바스러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 똑같은 대본을 읽어 내려가는 잿빛 일상.
그때였다. 한 살 위의 직장 동료가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며 늘어놓던 그 알량한 무용담이 내 고막을 때린 것은 배낭 하나 둘러메고 유레일패스 끊어서 에펠탑 앞에서 V자 좀 그렸다고 대단한 귀족이라도 된 양 구는 꼴이 웃기지도 않았다. 고작 유럽의 차가운 공기 며칠 마시고 왔다고, 해외 한 번 안 나가본 사람을 은근슬쩍 우물 안 개구리 취급하는 그 얄팍한 선민의식이라니. 속으로 '아이고, 나셨네 나셨어. 이 시대의 진정한 마르코 폴로 나셨네' 하고 코웃음을 쳤지만, 인간이란 참으로 얄궂고 유치한 생물이라 그 어설픈 우월감이 내 안의 어떤 위험한 뇌관을 딸깍, 하고 건드려버렸다.
어쩌면 나는 그저 이 질식할 것 같은 진공상태를 폭파시킬 명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빌어먹을, 나도 간다. 니들이 그렇게 빨아대는 해외, 내가 가고 만다." 서점에서 제일 얇은 도쿄 가이드북을 한 권 집어 들고, 무작정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것은 교양 있는 관광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시위였고, 타인의 근거 없는 무시에 대한 가장 육체적이고 직선적인 정면 돌파였다. 나는 그렇게 구글 맵도, 스마트폰도 없던 2006년의 거대한 아날로그 미로, 도쿄 한복판으로 내 몸을 던졌다. 마치 톡 쏘는 맥주 거품 속으로 뛰어드는 한 마리 개구리처럼.
당신의 진짜 자아는 에비스의 후미진 선술집이나 오다이바의 인공 해변 모래알 사이에 우아하게 숨어있지 않다. 진짜 자아는 매달 어김없이 날아오는 신용카드 할부 명세서 앞이나, 월요일 아침 출근을 알리는 스마트폰 알람 소리 앞에 가장 정확하고 찌질하게 존재한다. 본질은 개뿔. 우리가 무슨 석가모니도 아니고, 낯선 도시에서 고독을 씹는다고 대단한 깨달음이 오나?
그렇다면 2006년의 나는 왜 도쿄로 향했나? 자아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나 혼자서 이 낯설고 지독한 세상 한복판에 떨어져도, 누구의 도움 없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아주 원초적이고 생물학적인 증명이 필요했을 뿐이다.
우리는 가끔 엉뚱한 오기 덕분에 인생의 가장 선명한 챕터를 열곤 한다. 그 텔레마케터 동료의 재수 없는 무례함이 없었다면 나는 도쿄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얄팍한 무시를 나만의 묵직한 동력으로 뒤집어버리는 반항. 아무 계획 없이 가이드북 하나에 의지해 야마노테선에 오르던 그 방식은, 사실 내 인생에서 아름다운 '반항'이였다. 외로움을 사러 간 것이 아니라, '니들이 무시하는 내가 얼마나 단단한 놈인지' 내 두 다리로 뼈저리게 증명하러 간 서바이벌 게임이었던 셈이다.
텔레마케팅이라는 노동은 본질적으로 타인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지루한 과정이다. 언어와 소리만으로 실체 없는 익명의 인간들을 상대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영혼의 가장자리가 바싹 말라 바스러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 똑같은 대본을 읽어 내려가는 잿빛 일상.
그때였다. 한 살 위의 직장 동료가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며 늘어놓던 그 알량한 무용담이 내 고막을 때린 것은 배낭 하나 둘러메고 유레일패스 끊어서 에펠탑 앞에서 V자 좀 그렸다고 대단한 귀족이라도 된 양 구는 꼴이 웃기지도 않았다. 고작 유럽의 차가운 공기 며칠 마시고 왔다고, 해외 한 번 안 나가본 사람을 은근슬쩍 우물 안 개구리 취급하는 그 얄팍한 선민의식이라니. 속으로 '아이고, 나셨네 나셨어. 이 시대의 진정한 마르코 폴로 나셨네' 하고 코웃음을 쳤지만, 인간이란 참으로 얄궂고 유치한 생물이라 그 어설픈 우월감이 내 안의 어떤 위험한 뇌관을 딸깍, 하고 건드려버렸다.
어쩌면 나는 그저 이 질식할 것 같은 진공상태를 폭파시킬 명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빌어먹을, 나도 간다. 니들이 그렇게 빨아대는 해외, 내가 가고 만다." 서점에서 제일 얇은 도쿄 가이드북을 한 권 집어 들고, 무작정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것은 교양 있는 관광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시위였고, 타인의 근거 없는 무시에 대한 가장 육체적이고 직선적인 정면 돌파였다. 나는 그렇게 구글 맵도, 스마트폰도 없던 2006년의 거대한 아날로그 미로, 도쿄 한복판으로 내 몸을 던졌다. 마치 톡 쏘는 맥주 거품 속으로 뛰어드는 한 마리 개구리처럼.
자아를 찾는다는 소리에 대하여
흔히들 혼자 떠나는 여행을 두고 '온전한 나를 만나는 고요한 과정'이라느니, '일상의 껍데기를 벗고 내면을 사유하는 시간'이라느니 하는 말랑말랑한 에세이풍의 포장지를 씌운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대단한 자아 따위를 발견할 거란 환상은 애초에 버리는 게 낫다.당신의 진짜 자아는 에비스의 후미진 선술집이나 오다이바의 인공 해변 모래알 사이에 우아하게 숨어있지 않다. 진짜 자아는 매달 어김없이 날아오는 신용카드 할부 명세서 앞이나, 월요일 아침 출근을 알리는 스마트폰 알람 소리 앞에 가장 정확하고 찌질하게 존재한다. 본질은 개뿔. 우리가 무슨 석가모니도 아니고, 낯선 도시에서 고독을 씹는다고 대단한 깨달음이 오나?
그렇다면 2006년의 나는 왜 도쿄로 향했나? 자아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나 혼자서 이 낯설고 지독한 세상 한복판에 떨어져도, 누구의 도움 없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아주 원초적이고 생물학적인 증명이 필요했을 뿐이다.
우리는 가끔 엉뚱한 오기 덕분에 인생의 가장 선명한 챕터를 열곤 한다. 그 텔레마케터 동료의 재수 없는 무례함이 없었다면 나는 도쿄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얄팍한 무시를 나만의 묵직한 동력으로 뒤집어버리는 반항. 아무 계획 없이 가이드북 하나에 의지해 야마노테선에 오르던 그 방식은, 사실 내 인생에서 아름다운 '반항'이였다. 외로움을 사러 간 것이 아니라, '니들이 무시하는 내가 얼마나 단단한 놈인지' 내 두 다리로 뼈저리게 증명하러 간 서바이벌 게임이었던 셈이다.
야마노테선의 해부하기
도쿄를 읽어내는 문법을 이야기하자면, 결국 초록색 피가 흐르는 거대한 도시의 동맥, 야마노테선(山手線)을 빼놓을 수 없다. 구글 맵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편리한 시대가 왔지만, 도시의 물리적 골격을 이해하는 방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소름 돋게 똑같다. 도쿄는 야마노테선을 축으로 거대한 이분법적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 서쪽 라인 (시부야, 신주쿠, 하라주쿠): 인간의 욕망이 펄펄 끓어넘치는 거대한 용광로. 끊임없이 소비되고 파괴되며 다시 세워지는 혼돈과 서브컬처의 구역이다. 거대한 전광판, 파격적인 패션, 끝을 알 수 없는 인파가 당신의 혼을 쏙 빼놓을 것이다. 계획 따위는 버리고 휩쓸려 다니는 것이 이곳의 법칙이다.
- 동쪽 라인 (우에노, 아키하바라, 신바시, 도쿄): 과거의 잔해와 전통, 그리고 기묘한 오타쿠적 고요함이 내려앉은 구역. 이곳의 밤은 서쪽보다 일찍 찾아오고, 넥타이를 맨 채 고가도로 아래 빈 공간(가드시타)에서 낡은 꼬치구이에 생맥주를 삼키는 직장인들의 피로한 얼굴이 도시를 채운다.
와사비에 대한 기억과 세콤 로고의 중력
에비스역 근처의 좁아터진 캡슐 호텔. 관짝처럼 직사각형으로 파인 그 밀폐된 공간에 몸을 밀어 넣었을 때 나던 묘한 소독약 냄새와 저주파 백색소음을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도쿄의 밑바닥을 누볐다.도쿄는 내가 가이드북에서 활자로 읽었던 것보다 훨씬 더 기괴하고 거대했으며, 분주한 동시에 매혹적이었다. 에비스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 회덮밥을 시켜놓고, 와사비를 덜어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밥에 몽땅 비벼 먹었다가, 눈물과 콧물을 사정없이 쏟으며 현지인들 앞에서 미친 듯이 기침을 해대던 밤. 그것은 낯선 문화가 내 안일한 미각에 가한 첫 번째 폭력이였다.
시부야의 그 징그러울 정도로 거대한 횡단보도를 건널 때였다. 허공에 대고 진짜 돌을 던지는 시늉을 하며 나를 향해 덤벼들던 사내가 있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황급히 몸을 피하고 돌아보니, 그는 그저 이어폰을 낀 채 혼자 야구 투수 폼에 심취해 섀도 피칭 연습을 하던 미치광이일 뿐이었다. 하라주쿠 뒷골목에서는 온통 더러운 페인트가 범벅된 옷을 힙스터 패션이랍시고 걸친 채, 고가도로 아래서 길거리 농구를 하던 190cm가 훌쩍 넘는 일본인 무리를 마주쳤다. '일본인은 모두 왜소하고 정갈할 것이다'라는 알량한 편견이 슬램덩크의 농구공처럼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타인의 시선 따위는 완벽하게 무시한 채 자신들만의 세계에 지독하게 몰입해 있었다. 밝은 조도의 지하철 안에서 거침없이 사랑을 나누던 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하라주쿠 외곽의 한적한 길목을 정처 없이 걷던 중, 나는 운명처럼 붉은색 간판 하나를 마주쳤다. 'SECOM' 내가 한국에서 몸담았던 회사, 내가 밤낮으로 매달려 굴리던 보안 시스템의 로고가 이 낯선 이국땅 한복판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그 순간의 기분은 참으로 형언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아, 젠장. 그 알량한 무시가 싫어서 이 먼 곳까지 도망쳐 왔는데 결국 과거의 내 밥벌이의 중력장 안이구나' 하는 서늘한 기억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하지만 그 빌어먹을 기억의 끝에서, 역설적이게도 낯선 도시를 걷고 있는 내 두 다리에 단단한 핏대가 섰다. '그래, 나는 저 거대한 시스템의 톱니바퀴를 굴려 번 내 돈으로, 온전히 내 힘으로 지금 이 땅을 밟고 있는 거다.' 타인의 시선에 등 떠밀려 떠나왔지만, 결국 내가 어떤 정체성을 가진 직업인 이었는지 가장 낯선 곳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확인받은 순간이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도 넥타이를 이마에 질끈 동여매고 죽기 살기로 경보하듯 걸어가던 일본인 직장인. 하천변에서 아무렇지 않게 낚싯대를 드리우던 강태공들.
하네다 공항 수많은 인파 속에서 마치 삼류 영화의 억지스러운 한 장면처럼 우연히 마주친 국민학교 동창 강모 녀석. 오다이바의 모노레일을 타고 하루 종일 미래 도시 같은 풍경을 걷다가, 낡은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동전을 밀어 넣고 한국의 부모님께 전화를 걸며 목구멍으로 꾹꾹 삼켜냈던 알 수 없는 묵직한 서러움까지. 나는 도쿄라는 거대한 드럼 세탁기에 들어가 사정없이 돌려지고 헹궈진 기분이었다.
도시를 만나는 두 가지 방식 - 하네다와 나리타
도쿄로 들어가는 문은 크게 두 개다. 하네다와 나리타. 이는 단순히 비행기 표의 가격이나 공항의 크기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이 거대한 메가시티와 첫 관계를 맺는 '방식'의 본질적인 문제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하네다 공항 (HND) - 심장부로의 직접 타격: 비행기에서 내려 도쿄 모노레일(유리카모메와는 다른 궤도)에 올라타면, 창밖으로 도쿄만의 해안선과 거대한 물류창고가 스쳐 지나가고 30분도 채 되지 않아 야마노테선의 심장부(하마마츠초)에 당신을 짐짝처럼 토해낸다. 여유를 부릴 틈도 없이 도시의 가장 조밀한 공기 속으로 멱살 잡혀 끌려 들어가는 속도감. 체력을 아끼고 즉각적인 도시의 자극을 원한다면 고민 없이 하네다를 택해라.
- 나리타 공항 (NRT) - 압축과 팽창의 전주곡: 반면 나리타는 행정구역상 도쿄가 아니라 인접한 치바현에 위치해 있다. 스카이라이너나 나리타 익스프레스(N'EX)를 타고 도심으로 진입하는 1시간 남짓의 물리적 여정은 필수다. 하지만 이 지루함은 그 자체로 훌륭한 가치가 있다. 창밖으로 치바현의 한적한 농촌 풍경과 나지막한 주택가가 스쳐 가다, 점차 빽빽하고 차가운 콘크리트 빌딩 숲으로 변해가는 풍경의 스펙트럼. 이 점진적인 전이 과정은, 당신의 뇌세포를 일상 모드에서 여행 모드로 서서히 예열시키는 완벽한 아날로그적 완충 지대가 된다.
타인의 알량한 시선에 등 떠밀려 어찌될지 모르는 각오로 뛰어든 맥주거품속이, 역설적으로 내 뼈다귀를 단단하게 제련해 낸 눈부신 해방구였다.유리카모메. 지갑 속 노란 티켓의 반감기
내 낡은 지갑 한구석에는 20년 전 오다이바를 누빌 때 썼던 노란색 유리카모메 모노레일 티켓이 화석처럼 아직도 잠들어 있다.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결제가 끝나고 QR코드가 세상을 지배하는 지금, 빛바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그 티켓은 아무런 실용적 가치가 없다. 당장 쓰레기통에 처넣어도 무방한 물건이다.하지만 나는 안다. 이따금 삶이 힘들게 느껴질 때, 월요일 아침의 알람 소리가 내 존재를 질척하게 갉아먹는 것 같을 때, 그 낡은 노란 티켓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쓸어내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2006년의 도쿄로 단숨에 귀환한다. 가이드북 한 권에 의지해, 말도 통하지 않는 미로 같은 거리를 두려움 반 오기 반으로 걸어 나갔던 그 25살의 겁 없는 청년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의 본질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언젠가 닥쳐올 지독하게 뻔한 일상을 버텨내기 위해, 미리 내 몸속에 주입해 두는 고농축의 항체다. 20년의 세월이 흘러도, 다시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면 바로 그것일 테다. 우리는 결국 살아남기 위해, 온전한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서기 위해, 기꺼이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야만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기꺼이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본 포스팅은 개인적인 관찰과 주관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작성된 에세이입니다. 과거 상황과 현재는 다를수 있으며 이 글은 과거의 일화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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