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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기상. 거실에는 완벽한 어둠이 깔려 있다. 나는 이 고립된 우주 같은 정적 속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커피가 식어가는 소리조차 들릴 법한 적막 속에서 넷플릭스를 켜면, 화면은 불쑥 1999년의 서울을 토해낸다. 주인공 경록과 담덕의 나이가 관통하는 시대라 내 생각 속 상념의 파편들과 영화의 뼈대를 섞어, 요상한 리뷰를 작성해 보았다. 담덕 특유의 명랑한 삐딱선을 타보자.
하지만 진짜 내 뒤통수를 친 건 후반부다. 갑자기 기억 상실이라니? 넷플릭스 알고리즘에 '기억 상실'이 의무 할당제로 박혀 있는 건가? 이 얄팍하고 진부한 트렌드가 훅 치고 들어오는 순간, 영화가 공들여 쌓아 올린 순수적 작품성이 반토막 나버렸다. 잘 우려낸 평양냉면 육수에 불닭볶음면 소스를 쳐버린 느낌이랄까. 감동이 반감되는 걸 막을 길이 없다.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 사랑해 ㅋㅋ"미정을 연기하는 고아성을 보며 나는 묘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현실의 '은희 PD'가 스크린 속을 걸어 다니는 줄 알았다. 인스타그램 필터로 떡칠된 세상 속에서, 그녀는 현실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법한 투박하지만 단단한 맨얼굴을 보여준다.
박요한 이 녀석은 또 어떤가. 경록과 미정의 썸을 친척이라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쉴드 쳐주며 날리는 대사. "백구도 새끼 낳으면 한 마리는 누렇잖아." 이 미친 애드립 같은 대사에 나는 새벽 5시에 혼자 낄낄거리고 말았다.
근데 제일 압권은 경록 애비다. 지독한 외모지상주의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이 잘생긴 껍데기가 남긴 명대사.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 사랑해 ㅋㅋ" 아니, 이 무슨 싸이월드 감성 충만한 멍멍이 소리란 말인가.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지지만, 역설적으로 그 가벼움이 인간의 간사한 본성을 뼛속까지 후벼 판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영원할 것이라는 뭣같은 오해. 결국 사랑이란, 인간이 발명해 낸 가장 치밀한 상상력에 불과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구질구질한 현실의 이별을 담담하게 견뎌내며 소설 속에서라도 완성된 사랑을 갈구한다. 인간이란 참으로 구제 불능의 낭만주의자들이 아닌가. 언젠간 다시 만나겠지, 하는 알량한 희망을 품고서.
마지막 씬, 박요한의 매력이 활화산처럼 폭발한다. "아미고!!!" 하며 소환되는 장면과 인디언의 이야기 속 소재를 빌린 재회는 이 영화의 진짜 클라이막스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눈물 콧물 짜내는 새드엔딩이라 부를지 모른다. 하지만 시선을 살짝 비틀어보자. 삶과 죽음이 결국 하나의 선상에 놓여 있다는 그들의 그 불온한 상상과 이념. 그 빌어먹을 이념에 동의하는 순간, 이것은 완벽한 해피엔딩이 된다. 장소 불문, 우리는 이미 그 상상 속에서, 그 완벽한 어둠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 영화는 예쁘지 않은 여자에 대한 값싼 동정 따위가 아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걸려 매일매일 조금씩 죽어가는, 우리 모두의 민낯을 향해 날리는 우아하고도 위험한 노래다.
1999년의 아웃사이더들과 칼날 같은 아날로그
현대적인 칼날처럼 쨍하게 선명한 화질 위로, 아날로그 감성의 녹색과 주황색이 기가 막히게 스까(?)진 색감이 흐른다. 이종필 감독, 제법 변태적인 집요함이다.
영화의 배경은 '유토피아 백화점'. 이름부터 자본주의의 욕망이 뚝뚝 떨어지는 이곳 지하에는 스포트라이트 따위는 받지 못하는 인간들이 짱박혀 있다.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경록(문상민), 스스로를 괴물이라 부르며 지하에 숨은 미정(고아성), 그리고 혼외자라는 비밀을 꼬리표처럼 달고 세상에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금발의 요한(변요한). 외모 지상주의라는 뭣 같은 사이비 종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들은 주류의 방향과는 전혀 다른 궤도를 도는 모래 속의 진주들이다.식어버린 열기와 넷플릭스의 얄팍한 상술
극 중 경록이 미정에게 "우리 좋은 데 갈래요?"라고 묻는 순간. 아아, 모텔 네온사인이 화면을 스쳐 지나갈 때까지만 해도 모든 흐름이 완벽했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청춘들은 기어코 모텔을 지나쳐 고상하게 '레코드 가게'로 기어들어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묵직한 담론. 젠장, 뜨겁게 달아올랐던 내기분도 차갑게 식어버렸다. 브라질리언 왁싱 따위 개념조차 모르는 99년도 남자의 그 쿨함과 순수함이란, 때로는 이토록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한다.하지만 진짜 내 뒤통수를 친 건 후반부다. 갑자기 기억 상실이라니? 넷플릭스 알고리즘에 '기억 상실'이 의무 할당제로 박혀 있는 건가? 이 얄팍하고 진부한 트렌드가 훅 치고 들어오는 순간, 영화가 공들여 쌓아 올린 순수적 작품성이 반토막 나버렸다. 잘 우려낸 평양냉면 육수에 불닭볶음면 소스를 쳐버린 느낌이랄까. 감동이 반감되는 걸 막을 길이 없다.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 사랑해 ㅋㅋ"미정을 연기하는 고아성을 보며 나는 묘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현실의 '은희 PD'가 스크린 속을 걸어 다니는 줄 알았다. 인스타그램 필터로 떡칠된 세상 속에서, 그녀는 현실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법한 투박하지만 단단한 맨얼굴을 보여준다.
박요한 이 녀석은 또 어떤가. 경록과 미정의 썸을 친척이라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쉴드 쳐주며 날리는 대사. "백구도 새끼 낳으면 한 마리는 누렇잖아." 이 미친 애드립 같은 대사에 나는 새벽 5시에 혼자 낄낄거리고 말았다.
근데 제일 압권은 경록 애비다. 지독한 외모지상주의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이 잘생긴 껍데기가 남긴 명대사.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 사랑해 ㅋㅋ" 아니, 이 무슨 싸이월드 감성 충만한 멍멍이 소리란 말인가.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지지만, 역설적으로 그 가벼움이 인간의 간사한 본성을 뼛속까지 후벼 판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영원할 것이라는 뭣같은 오해. 결국 사랑이란, 인간이 발명해 낸 가장 치밀한 상상력에 불과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구질구질한 현실의 이별을 담담하게 견뎌내며 소설 속에서라도 완성된 사랑을 갈구한다. 인간이란 참으로 구제 불능의 낭만주의자들이 아닌가. 언젠간 다시 만나겠지, 하는 알량한 희망을 품고서.
마지막 씬, 박요한의 매력이 활화산처럼 폭발한다. "아미고!!!" 하며 소환되는 장면과 인디언의 이야기 속 소재를 빌린 재회는 이 영화의 진짜 클라이막스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눈물 콧물 짜내는 새드엔딩이라 부를지 모른다. 하지만 시선을 살짝 비틀어보자. 삶과 죽음이 결국 하나의 선상에 놓여 있다는 그들의 그 불온한 상상과 이념. 그 빌어먹을 이념에 동의하는 순간, 이것은 완벽한 해피엔딩이 된다. 장소 불문, 우리는 이미 그 상상 속에서, 그 완벽한 어둠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 영화는 예쁘지 않은 여자에 대한 값싼 동정 따위가 아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걸려 매일매일 조금씩 죽어가는, 우리 모두의 민낯을 향해 날리는 우아하고도 위험한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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