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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영우에게서 김재원의 리즈 시절을 보다? 넷플릭스 2026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를 보고에 안구 옹달샘 터진 사연 | 비평과 비명사이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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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새벽 5시의 시네마 식어버린 홍차와 잊혀진 기억, 그리고 여수 밤바다의 중력에 대하여

새벽 5시였다. 설날을 하루 앞둔 날의 공기는 묵직했고, 세상은 아직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나는 습관처럼 물을 끓여 얼그레이 홍차를 우렸다. 티백이 뜨거운 물 속에서 검붉은 피처럼 퍼져나가는 것을 보며, 넷플릭스를 켰다. 제목은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꽤나 긴 제목이다. 제목이 길고 감성적이라 일본 영화인가 했는데 한국영화였다. 단편 소설 제목 같기도 하고, 어딘가 촌스러운 90년대 순정만화 같기도 한 이 영화가 내 새벽을, 그리고 웬만해선 마르지 않는 내 안구의 옹달샘을 자극할 줄은 그때는 몰랐다.

무지의 발견, 그리고 '김재원'이라는 데자뷔솔직히 고백하자면,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알았다. 이게 일본 원작의 리메이크라는 사실을. 뭐, 상관없다. 때로는 무지가 가장 완벽한 감상의 조건이 되기도 하니까.
화면 속에 남자 주인공 '김재원(추영우 분)'이 등장했을 때, 나는 잠시 시공간이 뒤틀린 줄 알았다. "어라? 저거 김재원 배우 아냐?" 살인미소라 불리던 그 배우가 회춘약을 먹고 돌아왔나 싶을 정도로 닮았다. 아마도 캐스팅 디렉터는 "이제 진짜 김재원은 교복을 입을 수 없으니(세월은 잔혹하다), 그를 복제한 듯한 추영우를 데려오자"라고 판단했을 거다. 나의 합리적인 추론이다.

급식과 스마트폰, 그리고 낭만적이지 않은 나의 과거영화 속 학교 풍경은 내가 알던 그곳과는 다른 행성 같았다. 우리 때는 말이다, 모양 빠지게 한 손에 도시락 가방, 다른 손엔 신발 주머니를 들고 다녔다. 나는 그게 죽기보다 싫어서 책과 실내화는 학교에 쳐박아두고 가방엔 오직 책 몇권과 도시락만 넣고 다녔더랬다. (등골 브레이커의 시초였지.)
그런데 이 영화 속 아이들은 어떤가. 급식실에서 우아하게 밥을 먹고, 교사들의 별 폭력도 없으며 기억하고 싶은 내용은 발랄하게 스마트폰에 적어서 저장한다. 아주 'MZ'스럽다. 게다가 야간자율학습도 없이 대낮에 하교를 한다니. 이게 학교인가, 파라다이스인가. 무늬만 남녀공학이며 성별 나눠 수업받는 방식이 아닌 합반 교실에서 억지스러운 '마니또'나 '짝반 정하기' 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그들의 모습은, 남녀칠세부동석의 유교적 결계 속에 살던 나에게는 판타지 그 자체였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나는 이미 졌다.

여수, 빛의 직선과 편집된 도시의 미학배경은 여수다. 일본판이 쇼난의 바다라면, 한국판은 여수의 바다다. 감독은 여수의 오동도, 해상 케이블카, 세이지우드 경도, 신덕 해수욕장을 마치 하나의 거대한 세트장처럼 엮어냈다. 해떨어지는 위치나 모래질감과 지형을 봤을때 동해바다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처음엔 태안으로 추정함)
K-드라마 특유의 그 쨍하고 직선적인 빛의 활용. 영상미는 확실히 아름답다. 치밀하게 계산된 앵글 속에서 여수는 현실의 도시가 아니라, 기억을 잃어가는 소녀와 그 기억을 붙잡으려는 소년을 위한 거대한 무대장치로 변모한다. 현실에 존재하지만 현실 같지 않은 아름다움,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진 시각적 무기다.

기억은 뇌가 아니라 몸에 새겨진다줄거리는 단순하다.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리셋되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소녀 한서윤(신시아 분)과, 그녀의 오늘을 행복으로 채워주려는 소년 김재원.
하지만 클리셰라고 얕잡아보다간 명치를 맞는다. 특히 버스 장면. 데이트 후 잠들었다 깬 서윤이 기억을 잃고 패닉에 빠져 도망치듯 버스에 다시 오르고, 뒤늦게 쫓아간 재원이 심장의 통증을 느끼는 장면. 여기서부터 깔리는 복선은 서늘하고도 슬프다.
가장 압권은 '스케치북'이다. 서윤은 카페에서 공부하는 재원을 그린다. 중학교 때까지 그림을 배웠다는 설정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재원이 세상을 떠난 후(그렇다, 결국 소년은 간다), 서윤의 뇌는 그를 잊었지만 손은 그를 기억한다. 무의식적으로 재원의 얼굴을 그려내는 서윤의 손.
"기억은 사라져도, 몸은 기억한다."
소설에서 자주 쓰는 '상실의 은유'가 영상으로 구현된 느낌이랄까. 뇌의 데이터는 삭제되어도, 감정의 근육과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된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 그 지점에서 나는 결국 항복했다. 홍차는 다 식어빠졌는데, 눈에서는 물이 흘렀다. 젠장.

상실을 마주하는 태도에 대하여

이 영화는 묻는다. "내일이면 사라질 사랑을, 당신은 오늘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가?"
재원의 심장병 복선과 서윤의 기억상실은 서로 다른 형태의 '끝'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래가 없기에 현재에 모든 것을 건다.
새벽 5시, 설날을 앞둔 이 고요한 시간에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려 애쓰느라, 정작 지금 내 눈앞의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영화가 끝났다. 식어버린 홍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씁쓸했지만 끝맛은 달았다. 2026년의 설날 아침, 꽤 괜찮은 영화를 만났다. 추천한다. 단, 휴지는 필수다.

[영화 요약]

.장르: 로맨스 / 멜로
.촬영지: 전남 여수 (오동도, 해상 케이블카, 경도 등)
.시사점: 기억보다 강한 몸의 감각, 그리고 현재의 진심.
.한줄평: 김재원을 닮은 소년과 기억을 잃은 소녀가 여수 밤바다에서 써 내려간, 뇌를 배신하는 심장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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