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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당 박영손, 승사랑 박숙 할아버지, 분파조에 대하여 | 담덕 실록 #02


담덕 실록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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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당

조선 전기 정치 권력의 변동과 사대부 가문의 생존 전략


날씨가 선명하게 차가워졌다. 막 갈아낸 원두의 산미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Luke comb의 back 40 back의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내가 펼쳐놓은 족보라는 이름의 낡은 지도 위에는 이미 충분한 컨트리송이 흐르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마치 복잡하게 얽힌 우물의 바닥에서 마침내 맑은 물줄기를 찾아낸 것과 같다. 자, 이제 팩트라는 이름의 뼈대에 '썰'이라는 살을 붙여보겠다. 아주 솔직하고, 조금은 삐딱하게 말이다.

(전부 나에게는 할아버지들이지만 여기서는 이름쓰고 제3자 호칭을 써서 좀더 객관화 해보겠다) 

청풍당 박영손: "나는 권력의 똥물을 뒤집어쓰지 않겠다"(박중미의 증손자) 

먼저 나의 할아버지 박중미(밀직부원군) 이야기를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앞서 말했듯이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홍건적의 1차 침입(1359)을 격퇴하고 나라를 구한 '전쟁 영웅'이자, 공신으로 책봉되어 밀직부원군에 오른 '슈퍼 파워'였다. 금수저 중의 금수저, 다이아몬드 수저였지. 그런데 그의 증손자인 청풍당 박영손(朴英孫), 이 양반이 아주 재밌다. 호부터가 '청풍(淸風)', 맑은 바람이란다. 이게 무슨 뜻이냐? 담덕 식으로 해석하자면 이런 거지.

-"여의도(한양) 정치판 꼬라지가 아주 개판이구나. 나는 내 갈 길 가련다."

당시는 세조가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피비린내 나는 '계유정난'의 시대였다. 줄 한번 잘못 서면 삼족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는 살벌한 서바이벌 게임판이었지. 게다가 박영손은 당시 사림파의 아이돌이자 영남 학파의 거두, 김종직(金宗直) 라인이었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포지션이었냐면,
훗날 연산군이 "김종직의 글이 기분 나쁘다"며(무오사화) 이미 죽은 사람 무덤을 파서 목을 베어버릴(부관참시) 정도로 찍힌 라인이었다는거다. 박영손이 함양 훈도로 있으면서 김종직과 어울렸다는 건, 지금으로 치면 '반정부 시위 주동자 명단' 최상단에 이름이 올라갔다는 소리지.

그러니 청풍당이 '맑은 바람'을 찾은 건 낭만이 아니다. 그건 "살기 위한 처절한 거리두기"였다고본다. 훈구파 돼지들이 권력을 뜯어먹을 때, 그는 바람처럼 살기를 택한 거지. 그게 진짜 '간지'니까.

하지만 청풍당의 기록을 보면 함양 훈도를 하기 이전에 중앙 관직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 공식 과거 합격자 명단인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는 박영손의 급제 기록과 관직이 명확히 남아 있다. 
• 급제 기록:
세조 6년(1460년) 경진(庚辰) 별시(別試) 을과(乙科) 2등 (전체 6위) • 상당히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했다. 
• 성명: 박영손(朴榮孫) 
• 참고: 족보나 블로그에는 '꽃부리 영(英)'을 쓰기도 하지만,
과거 합격 명부에는 '영화 영(榮)'으로 기록되어 있다. 옛 기록에서는 같은 사람이라도 글자를 빌려 쓰거나(가차), 족보와 관찬 기록의 한자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방목 상의 본관은 나주에서 속현인 반남으로 수정된 쟁점이 있음). 본관(밀양)과 시기가 일치하므로 동일 인물로 본다. 
• 방목(합격자 명부)에 기록된 최종 관직: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 등…. 나름 성균관,사헌부, 홍문관에서일하며 북촌,가화동,삼청동 인근 서울생활] 
청풍당에게는 아들이 많았다. 무려 8형제(혹은 7형제+@). 그런데 이 형제들이 죄다 호에 '암(庵)' 자를 써. 월암, 국암, 매암...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멋짐을 보이지만, 이 형제들은 '단체로' 은둔을 선택했다. '암(庵)'은 암자, 즉 산속의 오두막을 뜻한다. 멀쩡한 기와집 놔두고 왜 암자를 표방했을까? 이건 당시 사회에 던지는 강력한 브랜드 메시지다. -세상 사람들: "야, 쟤네 할아버지가 부원군이라며? 벼슬 자리 하나 안 하나?" -8암 형제들: "즐. 우린 산속 오두막에서 책이나 읽을 거임. 벼슬? 관심 없음. 그게 우리 집안의 스웩(Swag)임." 이것은 일종의 '정치적 파업' 이자, '고귀한 선비 선언'이다. "너희들의 더러운 게임에 끼지 않겠다"는 무언의 시위였던 셈이지.

승사랑공 박숙: "투박함은 나의 무기다"(청풍당의 넷째 아들) 

이제 나의 직계 조상, 청풍당 할아버지의 넷째 아들 승사랑 박숙(朴淑) 어르신?(할아버지) 차례다. 그는 형제들 중 유일하게 '암' 대신 '청강(晴江)'이라는 호를 썼다. 비 갠 뒤의 맑은 강. 
형들이 산속 오두막(암자)에 있을 때, 그는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나보다.

그런데 족보 서문의 그 문장,

"궁벽한 시골에 거처함에 점점 쇠잔하였으나, 방자하고 투박한 풍속에 물들어..." 자, 이걸 해석하면 "아이고 우리 집안 망했네"라고 보면된다. 그의 아버지 청풍당이 김종직과 어울렸으니 정계끌려가서 고문받고 전라도 귀향갔다가 풀려나서 돌아왔으니
당시 사림과 훈구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친족까지 연좌하던 갑자사화 등의 상황은 암담했을거다.

결과적으로 중앙 권력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고귀한 선비의 티를 벗고 거친 촌부의 탈을 쓴 것이다. 그 '투박함'이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사화(士禍)의 칼날을 막아낸 가장 단단한 갑옷아니었을까.

에필로그: 살아남은 자의 커피 

다시 커피 이야기로 돌아와. 잔에 남은 커피가 식어간다. 하지만 그 맛은 처음보다 더 진하고 깊어졌다. 나의 족보에 적힌 "투박한 풍속에 물들었다"는 고백은, 실패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미친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이 가문을 지키기 위해 바쳤던 '자존심의 등가교환'이었다.

박중미의 영광, 박영손의 지조, 그리고 박숙의 생존 본능.

이 모든 것이 섞여 수백 년의 시간을 통과한 뒤, 지금 나라는 존재로 앉아 있는 것이다. 나의 혈관 속에 흐르는 것은 단순히 쇠잔한 시골 양반의 피가 아니라, '미친 세상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기어이 뿌리를 내린' 아주 질긴 생명력과 고고한 정신, 그 자체니까.

사실 이 얘기는 따지고보면 지금으로부터 526년전 이탈리아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고 있을때." 와 비슷한 시기의 일이다.

어때?? 그래도 꽤 괜찮은 안주거리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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