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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곡이라는 이름의 그 요상한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우선 ‘모호함’이라는 단어를 먼저 꺼내야 할 것 같다. 그곳은 완벽한 농촌도, 그렇다고 세련된 도시도 아니었다. 산업화의 기름 냄새와 소똥 냄새가 공기 중에서 절묘한 비율로 칵테일처럼 섞여 있던 곳.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낡은 육교를 건너 초평리로 넘어가면, 거기엔 왕송호수와 연결된 광활한 논밭이 일종의 ‘침묵의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빈 분유 깡통을 주워 모았다. 그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소우주를 담을 ‘연소 장치’를 설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곡동(현 의왕역 인근)의 역사와 변천)
못과 망치로 깡통에 구멍을 뚫는 행위는 정교한 엔지니어링에 가까웠다. 구멍이 너무 적으면 산소 부족으로 불꽃은 질식하고, 너무 많으면 숯덩이가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우리는 어머니 몰래 옷걸이를 잘라 손잡이를 만들거나 긴 철사를 잘라 썼다. 그것은 일종의 ‘구속’이었다. 불이라는 야성을 철사라는 문명으로 붙들어 매는 행위.
전통이라는 이름의 면죄부를 빌려, 우리는 어둠 속에 거대한 붉은 도넛을 그렸다. 그것은 캄캄한 세상에 던지는 소년들의 존재 증명이었다. 옆집 형이 솔방울을 가득 채워 화력을 높이는 모습은, 마치 더 배기량이 큰 엔진을 과시하는 스포츠카 오너의 허세와 닮아 있었다. 우리는 ‘전통’을 계승한 게 아니라, ‘파괴의 쾌감’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들이 달려와 눈을 퍼붓고 발로 짓이기며 불을 껐다. 그날 밤, 어머니는 내게 엄포를 놓으셨다. “불장난하면 밤에 지도 그린다! 내일 소금 얻으러 갈 준비나 해!”
나는 이불 속에서 생각했다.
“엄마, 제가 그린 건 지도가 아니라, 그정도면 밤하늘의 별똥별이었어요.”
뭐, 결국 지도는 그리지 않았지만, 다음 날 거울 속의 나는 오른쪽 눈썹 한쪽이 세련된(?) 펌을 한 것처럼 꼬부라져 있었다. 말하자면, 불꽃이 내 얼굴에 남긴 ‘사인’이었달까. 아, 웃지 마시라. 나름 ‘핫(Hot)’한 스타일이었으니까.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이름의 불깡통을 돌리고 있지만,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불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손에 쥔 철사가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그 자체다.
우리 삶도 가끔은 ‘번아웃’이 필요하다. 꽉 쥐고 있던 구심력(집착)을 내려놓고, 때로는 깡통이 날아가 짚단을 태우는 사고가 터져야만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무엇을 그토록 세게 돌리고 있었는지, 그리고 내 눈썹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겨울바람에서 문득 탄내를 맡을 때면, 나는 여전히 부곡의 그 육교를 떠올린다. 타버린 짚단은 결국 비료가 되었을 것이고, 내 꼬부라진 눈썹도 다시 자라났다. 그러니 당신도 지금 무언가 타버린 폐허 위에 서 있다면, 너무 상심하지 마시길. 재가 깊을수록 그다음 봄의 싹은 유난히 푸른 법이니까.
당신의 마음속에 남은 그 탄내가, 사실은 새로운 계절의 향기일지도 모른다.
시스템으로써의 불깡통
대보름의 쥐불놀이를 흔히 ‘민속놀이’라는 납작한 단어로 정의하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소년들이 생애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원운동의 미학’이자, 통제 가능한 파괴의 실험이었다.못과 망치로 깡통에 구멍을 뚫는 행위는 정교한 엔지니어링에 가까웠다. 구멍이 너무 적으면 산소 부족으로 불꽃은 질식하고, 너무 많으면 숯덩이가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우리는 어머니 몰래 옷걸이를 잘라 손잡이를 만들거나 긴 철사를 잘라 썼다. 그것은 일종의 ‘구속’이었다. 불이라는 야성을 철사라는 문명으로 붙들어 매는 행위.
사실 우리는 모두 방화에 미친 아이였다
하지만 솔직해져 보자. 우리가 정말로 풍년과 해충 박멸을 위해 그 추운 밤에 떨며 서 있었을까? 천만에. 우리는 그저 무언가를 합법적으로 ‘태우고 싶었을’ 뿐이다.전통이라는 이름의 면죄부를 빌려, 우리는 어둠 속에 거대한 붉은 도넛을 그렸다. 그것은 캄캄한 세상에 던지는 소년들의 존재 증명이었다. 옆집 형이 솔방울을 가득 채워 화력을 높이는 모습은, 마치 더 배기량이 큰 엔진을 과시하는 스포츠카 오너의 허세와 닮아 있었다. 우리는 ‘전통’을 계승한 게 아니라, ‘파괴의 쾌감’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탄 눈썹과 지도
사건은 내가 원심력의 한계를 시험하려 했을 때 발생했다. '우웅- 우웅-' 하는 공기의 마찰음이 절정에 달했을 때, 낡은 철사는 비명을 지르며 끊어졌다. 나의 ‘리틀 보이’(깡통)는 논뚜렁밖 짚단으로 유성처럼 처박혔다. 그 짚단은 태우는게 아닌데…어른들이 달려와 눈을 퍼붓고 발로 짓이기며 불을 껐다. 그날 밤, 어머니는 내게 엄포를 놓으셨다. “불장난하면 밤에 지도 그린다! 내일 소금 얻으러 갈 준비나 해!”
나는 이불 속에서 생각했다.
“엄마, 제가 그린 건 지도가 아니라, 그정도면 밤하늘의 별똥별이었어요.”
뭐, 결국 지도는 그리지 않았지만, 다음 날 거울 속의 나는 오른쪽 눈썹 한쪽이 세련된(?) 펌을 한 것처럼 꼬부라져 있었다. 말하자면, 불꽃이 내 얼굴에 남긴 ‘사인’이었달까. 아, 웃지 마시라. 나름 ‘핫(Hot)’한 스타일이었으니까.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이름의 불깡통을 돌리고 있지만,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불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손에 쥔 철사가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그 자체다.
재가 되어야 다시 핀다
쥐불놀이의 핵심은 결국 ‘태워 없앰’에 있다. 낡은 풀과 해충의 알을 태워야 비로소 땅은 새로운 영양분을 얻는다.우리 삶도 가끔은 ‘번아웃’이 필요하다. 꽉 쥐고 있던 구심력(집착)을 내려놓고, 때로는 깡통이 날아가 짚단을 태우는 사고가 터져야만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무엇을 그토록 세게 돌리고 있었는지, 그리고 내 눈썹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겨울바람에서 문득 탄내를 맡을 때면, 나는 여전히 부곡의 그 육교를 떠올린다. 타버린 짚단은 결국 비료가 되었을 것이고, 내 꼬부라진 눈썹도 다시 자라났다. 그러니 당신도 지금 무언가 타버린 폐허 위에 서 있다면, 너무 상심하지 마시길. 재가 깊을수록 그다음 봄의 싹은 유난히 푸른 법이니까.
당신의 마음속에 남은 그 탄내가, 사실은 새로운 계절의 향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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