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전체보기
![]() |
| 저작권 무료 이미지 |
시대가 아무리 맹렬한 속도로 앞을 향해 달려간다 해도, 어떤 것들은 결코 변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이를테면 교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던 화목난로 같은 것들 말이다.
60명의 심장이 만들어내던 촌스러운 완벽함
방과 후가 되면 우리 60명의 소년 소녀들은 마루바닥에 엎드려 일제히 왁스를 칠했다. 그 코끝을 찌르는 화학적 냄새는 묘하게도 지금의 나를 강렬하게 자극하는 향수의 근원이다. 크리스마스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 우리는 엽서를 만들었고, 마니또를 정했으며, 눈싸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이끌고 약속이나 한 듯 화목난로 곁으로 모여들었다.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60명의 작은 심장들이 뿜어내는 온기가 교실을 가득 채웠다. 중학교의 야만적인 귀싸대기나 원산폭격 같은 더러운 체벌이 아직 유입되기 전, 그 평화롭던 국민학교 시절의 겨울은 분명 완벽에 가까운 훌륭한 풍경이었다. (추억의 학교 유물과 문화)
솔직해지자. 10대 초반의 어린아이들이 학교 바닥에 왁스를 떡칠하며 광을 내고, 당번이라는 이름 하에 무거운 땔감을 나르며 시커먼 재를 치우던 그 '책임감과 노동의 체험'이라는 것은, 결국 교육청의 예산을 아끼기 위한 국가 공인 무임금 아동 노동 아니었을까?
우리는 그것을 '공동체의 구심점'이라 불렀지만, 사실 층층이 쌓아 올린 양은 도시락 맨 아래 칸의 밥이 시커멓게 타들어갈때, 우리는 그저 배가 고파 환장했던 것뿐이다. 이쯤 되면 '함께 나누는 따뜻함'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를 부려먹은 어른들의 졸라게 훌륭한 가스라이팅 현장이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벌을 받으며 난로틈 사이 빨간 불꽃을 멍하니 바라볼 때면, 나는 늘 속으로 생각했다.
'이름은 화목(火木)난로인데, 왜 선생님과 내 사이는 화목(和睦)하지 않은 걸까?' 하고....미안하다.
이런 시시껄렁한 개그나 속으로 치고 앉아있었으니, 엎드려뻗쳐를 당하는 것은 세계의 불가결한 규칙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것은 화목난로의 온기가 아니라, 옷에 불똥이 튀어 빵꾸가 나도 그저 헤실헤실 웃을 수 있었던 '순진했던 시절의 나 자신'이다.
친구들과 왁스를 바르며 떠들던 수다 소리, 타닥타닥 타들어가던 장작의 백색소음, 흔들 도시락이 부딪히는 경쾌한 마찰음. 시대가 아무리 발전해 먼지 하나 없는 최첨단 냉난방 시스템이 교실을 채운다 해도, 60명의 아이들이 부대끼며 만들어내던 그 촌스럽고도 아날로그적인 온도는 결코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난로 곁에서 장작 대신 우리의 유년 시절을 남김없이 활활 태웠고, 그것은 돌아보건대 꽤 아름답고 훌륭한 연소가 아니었나, 하고 나는 생각한다.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60명의 작은 심장들이 뿜어내는 온기가 교실을 가득 채웠다. 중학교의 야만적인 귀싸대기나 원산폭격 같은 더러운 체벌이 아직 유입되기 전, 그 평화롭던 국민학교 시절의 겨울은 분명 완벽에 가까운 훌륭한 풍경이었다. (추억의 학교 유물과 문화)
낭만으로 포장된 합법적 무상노동
하지만 기억의 필터를 한 꺼풀만 벗겨내 보자. 그 완벽했던 낭만의 이면에는 꽤나 냉정한 사실이 숨어 있다.솔직해지자. 10대 초반의 어린아이들이 학교 바닥에 왁스를 떡칠하며 광을 내고, 당번이라는 이름 하에 무거운 땔감을 나르며 시커먼 재를 치우던 그 '책임감과 노동의 체험'이라는 것은, 결국 교육청의 예산을 아끼기 위한 국가 공인 무임금 아동 노동 아니었을까?
우리는 그것을 '공동체의 구심점'이라 불렀지만, 사실 층층이 쌓아 올린 양은 도시락 맨 아래 칸의 밥이 시커멓게 타들어갈때, 우리는 그저 배가 고파 환장했던 것뿐이다. 이쯤 되면 '함께 나누는 따뜻함'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를 부려먹은 어른들의 졸라게 훌륭한 가스라이팅 현장이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에너지가 넘치던 소년의 엎드려뻗쳐
그럼에도 나는 그 시절을 미워할 수가 없다. 당시의 나는 주의가 꽤 산만했고, 쓸데없는 에너지가 넘치는, 요컨대 '개그감이 살아있는' 소년이었다. 비록 손을 들고 서 있거나 엎드려뻗쳐를 하는 정도로 죄값을 치르긴 했지만 말이다.벌을 받으며 난로틈 사이 빨간 불꽃을 멍하니 바라볼 때면, 나는 늘 속으로 생각했다.
'이름은 화목(火木)난로인데, 왜 선생님과 내 사이는 화목(和睦)하지 않은 걸까?' 하고....미안하다.
이런 시시껄렁한 개그나 속으로 치고 앉아있었으니, 엎드려뻗쳐를 당하는 것은 세계의 불가결한 규칙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것은 화목난로의 온기가 아니라, 옷에 불똥이 튀어 빵꾸가 나도 그저 헤실헤실 웃을 수 있었던 '순진했던 시절의 나 자신'이다.
훌륭하게 연소된 유년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눈이 내리는 겨울날이면 어김없이 그 시절의 매캐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친구들과 왁스를 바르며 떠들던 수다 소리, 타닥타닥 타들어가던 장작의 백색소음, 흔들 도시락이 부딪히는 경쾌한 마찰음. 시대가 아무리 발전해 먼지 하나 없는 최첨단 냉난방 시스템이 교실을 채운다 해도, 60명의 아이들이 부대끼며 만들어내던 그 촌스럽고도 아날로그적인 온도는 결코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난로 곁에서 장작 대신 우리의 유년 시절을 남김없이 활활 태웠고, 그것은 돌아보건대 꽤 아름답고 훌륭한 연소가 아니었나, 하고 나는 생각한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