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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원 취업 실제 후기 | 담덕 실록 #21


담덕 실록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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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취업 후기

조직의 리스크 헤징을 내 삶의 레버리지로 바꾸는 역발상 생존 전략.


하루에 150통씩 허공을 향해 전화를 걸어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매일 아침 입안에 한 움큼의 모래알을 털어 넣고 억지로 삼키는 일과 비슷했다.

어느 순간부터 말이란 것이 그저 텅 빈 기호처럼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상투적이고 형식화된 문장들이 귓가를 맴돌다 바닥으로 툭툭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점차 전화를 거는 행위 자체에 짙은 거부감을 느꼈다. 인간과 인간이 음성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이 그토록 폭력적으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떠났다. 전 세콤 동료들이 알면 배를 잡고 웃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내 삶의 척추를 다시 반듯하게 세워줄, 규칙적이고 조용한 템포의 주 5일이 필요했다. 은행 청원경찰의 제복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무너진 일상에 꽤 훌륭한 깁스가 되어주었다.
감정 노동 텔레마케터
은행 5층에는 법무법인이 하나 있었다. 가끔 점심시간이 되면 그곳의 사무장이라는 사내가 내려와 소파에서 낮잠을 자거나 나와 시시껄껄한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고졸이라는 이력서의 텅 빈 여백이 늘 마음에 걸렸던 나에게, 법률 사무라는 세계는 유리 너머의 수족관 같았다. 하지만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왜 안 돼? 할 수 있어"라고 말했다. 그 무심한 한마디가 나를 '중앙법률사무교육원'이라는 낯선 학원의 야간반 책상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민간자격증 하나를 손에 쥐고 서초동의 공기를 마시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법인이 합병되는 혼란 속에서도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조직의 결을 타며 버텼다. 한 명의 PF 전담 변호사와, 또 다른 한 명의 송무 변호사가 나를 전담 직원처럼 의지할 때쯤, 한 6년정도 다니며 나는 이 세계의 문법을 어느 정도 해독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스노보드를 타다 허리가 부러져 5개월을 통째로 날려 먹고 돌아왔을 때, 책상 위의 공기는 미묘하게, 그러나 완벽하게 변해 있었다. 회사는 나 없이도 꾸역꾸역, 아주 잘 돌아가고 있었다. 내 손에 집중되어 있던 업무는 새로 들어온 직원에게 무참히 분산되어 있었고, 조직은 나를 서면 작성하고 때론 법원의 칼바람을 맞는 송무팀이 아닌, 서류의 띄어쓰기 하나로 보정명령이 날아드는 가장 정적이고 건조한 등기팀으로 밀어 넣었다.

이것은 서초동이라는 비정한 정글에서 내가 겪은, 아주 사적이고도 서늘한 멸망과 부활의 연대기다.
학벌의 장벽을 넘을수 있을까

톱니바퀴라는 착각과 사회의 민낯

우리는 종종 거대한 기계 장치 속에서 자신이 꽤 대체 불가능한 톱니바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내가 없으면 이 부서는 당장 마비될 것이고, 나를 의지하던 그 변호사들은 공탁이나 강제집행 하나 제대로 못 해서 쩔쩔맬 것이라는 달콤한 망상.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서초동의 법무법인, 특히 '푼바이'로 연명하는 별산제 로펌에서 인간적인 의리나 대체 불가능한 인재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발가벗겨진 자본주의의 논리로 움직이는 생물이다.

5개월의 공백 기간 동안, 경영진은 치열하게 주판알을 튕겼을 것이다. 한 명에게 업무가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곧 조직의 '리스크'를 의미한다. 내가 허리를 다친 것이 그들에게는 일종의 스트레스 테스트였다. "이 친구가 없어도 회사가 돌아가는가?" 대답은 '그렇다'였다. 좀 삐걱거리긴 했겠지만, 새로운 직원을 투입해 업무를 쪼개고 분산시킴으로써 그들은 리스크를 성공적으로 헤징(Hedging)했다.

혹자는 이렇게 반론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실무를 책임지던 베테랑을 복귀하자마자 구석진 등기팀으로 박아버리는 건 너무 매정한 꼬리 자르기 아니냐? 조직의 폭력이다!"

그렇다 이것을 단순한 '토사구팽'이나 '인사 보복'으로 해석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철저한 실리주의자들이다.

별산제로 운영하는 법무법인 특성상 다른팀으로 넘김으로써 인건비는 절약하고 분담금은 완벽히 햇지 시킬수 있는 것이다. 등기팀으로 인사 이동은 소송처럼 몇 년씩 끌며 판사의 심증에 기대는 도박판이 아니다. 절차와 서류만 맞으면 그날로 법인 통장에 현금이 꽂히는, 로펌의 가장 확실한 '현금 인출기(Cash Cow)'다. 5개월간의 테스트를 끝낸 인사이동은 소름 돋도록 정교한 비용 대비 효용의 극대화 작업이었다.
법무법인 별산제

기꺼이 '부속품'의 굴레를 벗어던지다

처음 그 상황을 마주했을 때, 입안에는 다시 텔레마케터 시절의 그 모래알 같은 씁쓸함이 감돌았을지 모른다. 나를 전담처럼 아끼던 변호사마저 신입 직원과 일을 나누며 나의 파이를 줄여나가는 모습을 볼 때,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니까.

하지만 관점을 살짝 비틀어보면 이 역시 해방아닌가?!

조직이 나 없이도 돌아간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 내가 짊어지고 있던 '조직에 대한 불필요한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배낭은 그 즉시 폐기 처분되었다. 업무가 분산되었다는 것은, 곧 내가 이 사무실의 좁은 인간관계와 특정 변호사의 기분에 내 인생을 저당 잡힐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었다.

만약 그들이 나를 계속 송무팀으로, 대체 불가능한 심복으로 남겨두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아마 그 알량한 인정 욕구에 취해, 서초동의 매연을 마시며 평생 남의 이름표가 붙은 가압류 가처분이나 강제집행문서등을 밤새 타이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졸이라는 학벌의 콤플렉스를 조직에 헌신함으로써 보상받으려 발버둥 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게 너무나 명확하게 선을 그어주었다. "너는 우리에게 필요한 자원이지만, 대체 불가능한 존재는 아니다."

아아, 고맙습니다. 그 서늘한 선 긋기 덕분에 나는 깨달았다. 남이 만들어 놓은 판(시스템) 안에서 대체 불가능해지려 노력하는 것은 노예의 최상급을 향한 질주에 불과하다는 것을. 진짜 생존은 내 손으로 다른 판을 짜는 데 있다는 것을.

등기 서류의 빽빽한 활자들을 검토하며, 나는 조용히 딴 주머니를 차기 시작했다. 법이라는 아날로그 텍스트 너머에 있는 카메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 물리적 현상을 찍는 가치, 영업의 알고리즘. 그들이 나를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취급했기에, 나 역시 조직을 나의 생존을 위한 관찰 기지이자 '월급 나오는 도서관'으로 역이용할 수 있었다. 그 5개월의 공백과 등기팀으로의 좌천이 없었다면, 지금 처럼 영업력을 중시하며 몇가지 세계를 경험해본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는 사실은 서운해할 배신이 아니라, 당신이 더 이상 남의 시스템을 위해 뼈를 갈아 넣지 않아도 된다는 가장 완벽하고 합법적인 '독립 통지서'다.
휴직 후 복귀 법적 절차

살아남은 자의 실용적 기하학

가끔 커피를 내릴 때면, 서초동 법원 거리에서 맡았던 특유의 오래된 종이 냄새와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떠오른다.

지금도 어딘가의 사무실에서는 자신이 혼자 2~3인분의 업무를 쳐내며 "나 없으면 여긴 망해"라고 자위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특정 상사의 심복이 되어 그 연줄이 영원할 거라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15 년 전의 서초동, 그 냉혹한 별산제 로펌의 생태계를 통과하며 얻은 실용적인 진실 하나를 조용히 식탁 위에 올려놓고 싶다.

첫째, 업무의 독점은 영원한 권력이 아니다.

회사는 특정 개인에게 업무가 쏠리는 것을 가장 큰 리스크로 본다. 당신이 일을 잘할수록, 회사는 당신을 대체하거나 당신의 업무를 분산시킬 매뉴얼을 몰래 준비한다. 따라서 '나만 할 수 있는 일'에 집착하면 안된다. 대신 '이 일이 돌아가는 전체 판의 구조'를 읽는 시야를 가져야한다. 요즘은 서면을 잘 쓰는 기술은 AI나 신입이 대체할 수 있지만, 소송과 등기가 어떻게 로펌의 캐시플로우를 형성하는지 꿰뚫는 시야는 오직 당신만의 무기가 된다.

둘째, '업무 분산'을 섭섭해하지 말고 잉여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나의 일이 후배에게, 혹은 시스템으로 넘어간다면 분노할 것이 아니라 환호해야 한다. 그것은 당신에게 '시간'이라는 최고의 자본이 생겼다는 뜻이다. 서초동의 등기팀 데스크에서 묵묵히 서류를 넘기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인터넷의 정보와 새로운 구조를 탐색했던 것처럼 말이다. 분산된 업무량만큼 비축된 에너지를 '회사 밖의 나'를 빌드업하는 데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셋째, 언제든 내릴 수 있는 구명보트를 준비하고 있어야한다.

변호사들이 분담금 몇 푼에 동료를 향해 돌변하는 것을 수 없이 보았다. 조직은 이익 앞에서는 언제든 태세를 전환한다. 그러니 개인적인 유대감에 너무 많은 감정을 투자하지 마라. 정중하되 건조하게 거리를 유지하고, 그들의 변덕이 내 삶의 스텝을 꼬이게 만들지 못하도록 압도적인 타 영역(예컨대 마케팅, 영업력 등)의 기술을 갈고닦아야 한다.

아웃바운딩 영업중 150통의 전화를 걸며 잃어버렸던 말의 의미를, 나는 법무법인의 가장 건조한 부서에서 역설적으로 되찾았다. 타인의 의지에 이리저리 휩쓸리던 고졸의 사무원은, 허리가 부러지고 책상을 뺏기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세계를 직시하는 차가운 눈을 얻었다.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조직의 인정이 아니라, 세계의 위선을 정확히 조롱하고 그 위에서 경쾌하게 스텝을 밟을 수 있는 나만의 리듬이다. 눈보라 치던 스키장 슬로프에서 부러졌던 것은 한낱 뼈대가 아니라, 타인에게 의존하려 했던 낡은 자아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부러진 자리에서 돋아난 새로운 척추는, 꽤 단단하고 제법 유연하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본 포스팅은 개인적인 관찰과 주관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작성된 에세이입니다. 과거 상황과 현재는 다를수 있으며 이 글은 과거의 일화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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